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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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잔뜩 젖은 저 하늘을 물고 와서 숲에 슬쩍 걸쳐 놓았다 새는
젖은 하늘은 매우 말랑거려 바람이 일 때마다 날카로운 가지에 찢길까
바라보는 눈길 매우 조심스럽다
하늘이 푸르게 마르는 동안에도 새는 죽은 나뭇가지들을 쉬지 않고 두드리고
쪼아서 기어이 가지마다 싹을 틔운다 가뭇하다 지금 새는 그러다가 생각난 듯
비 끝 잔 가지 이슬을 잔뜩 모으기 시작한다 그것 숲 가득하게 푸른 잎 흔들리게
하려 한다
이제 새들은 소리로 꽃들을 이곳저곳에 수 많이 피워낼 것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향기는 꽃들은 뿌리 속 깊은 곳 감추고 있다가 우리가 한눈
파는 사이 슬며시 내놓는다 그래서 꽃들의 향기는 오래 깊고 은근하며 꽃마다
그 매무새처럼 각기 다르다
새들이 불러서 온다 봄의 아침엔 새는 마음이 한껏 들떠있어 실수가 잦다
머리를 흔들어 이슬방울에 박힌 햇살 부스러기를 떼어내려 하지만 쉽지 않아 빛을
땅으로 자주 떨어뜨린다 실수로 떨어진 햇빛 부스러기들이 숲에 자꾸만 쌓여 어린
나무로 자란다
새는 하늘에 오르기 전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기도한다 새는 아예 뼛속 뿐만 아니라
깃털 속까지 비웠다 종일 소리 들을 모아서 꽃 피우기를 독려하다 가도 오후 붉은
태양이 지평 저 끝 가까이 내려오면 새는 숲에서 잘 마른 하늘을 거두어 어두워지기 전
저 하늘로 훌쩍 길 떠난다
댓글목록
고나plm님의 댓글

멋있네요!
호쾌하게 써내려간 시가....
문장도 행간도 모두 단단히 직조되어 읽는 내내 시적 긴장감을 느낍니다
매연마다 연결어가 예술적이서,
이강로님의 댓글

졸시에 과찬입니다.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