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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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의 표정을 훔쳤다
누군가 터트린 신호음에 따라
한순간 숨을 참고 건져 올린 표정마다 현상금이 걸린 몽타주다
네모 틀 안에 동거하는 짤막한 웃음 뒤의 그늘 농도,
고흐의 해바라기에서 쏟아지는 노란 암흑보다 짙다
앞을 바라보는 방향은 같으나
영정사진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수배된 얼굴 표정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고
질퍽거리는 바람을 거슬러 가야 할 방향이 서로 다르다
하나의 표정을 굳히기까지
어딘가 조금은 멀미 나는 웃음을 뽑아낸 얼굴들의 근육,
속을 텅 비운 채 기울어진 시간을 붙잡고 호흡을 멈춘
마네킹이 되어야 했다
제 뼈를 깎아 세상에 대고 피리를 불어도
세상 사람들은 들으려하지 않았기에
빗금 친 세상의 창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며 촛불을 끄는 연습을 해야 했다
나를 훅 불어 껐을 때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먼저 환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발목을 담근 단체 사진 속의 얼굴들이 웃고 있지만
그들은 사각의 링 위에 오른 사람들이다
하늘이 나를 검거할 때까지 나는 귀가 가난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댓글목록
선돌님의 댓글

' 단체사진' 하니까
예전에 찍었던 단체사진들이 떠올라
새삼스레 사진앨범을 뒤척여 봅니다
이구, 지금껏 하늘(天網恢恢 疎而不失 - 하늘의 그물은 넓디넓어서, 성기면서도 놓치는 것이 없다)에
아직까정 검거되지 않은 건
저를 비롯해 두세명 밖에 안되네요
아무튼, 요즘의 염라국은 근무기강이 엉망인 듯..요
(나 같은 게 아직 숨쉬는 걸 보면)
좋은 시에
생각 잠기며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수퍼스톰님의 댓글의 댓글

옛날에 단체 사진 참 많이 찍었는데
나이를 먹다 보니 사진 찍는 게 싫어졌습니다.
제 친구도 벌써 여러 명 검거되었습니다.
부족한 시,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힐링님의 댓글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 표정을 훔쳤다
하늘이 나를 검거할 때까지는 귀가 가난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붓글씨로 표현하자면 일필휘지입니다.
이 정도 표현을 하야 시를 쓴다 하지
우리네처럼 허접스럽게 구는 시들 버려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더 이상의 어떤 비유도 설명도 없어도
속까지 후련하게 한판 멋지게 펼쳐 놓쳐 놓은
이 시라는 굿거리 장단에 한 판 춤을 추고 갑니다.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의 댓글

너무 과찬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단체로 찍은 오래된 사진을 보면 옛 추억에 젖어 흑백 시절을 돌아봅니다.
늘 왕성한 필력으로 시마을을 풍요롭게 장식하시는
힐링 시인님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