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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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아십니까
태초에 나는 이름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도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을에서 땅을 일구고
꽃을 피우기 위해선
삽자루보다 단단한 이름이 있어야 한다기에
나는 나에게 pyung이라는
암호 같은 친구를 소개해주었다
이름은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어야 하지만
가면과 마찬가지로 얼굴을
꼭꼭 숨겨주면 더 좋은 것으로 치부됐으므로
pyung은 조용하게 함께 생활하다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금전문제 같은 게 전혀 없었는데도
어느 날 고평이라는 작자를 대타로 불러다놓고
마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고평은 꽃도 피우고
열매도 어느 정도 거두어들이는 듯 하더니
잠깐 내가 마실을 다녀온 사이
뻐꾸기라는 지나가던 한량을 앉혀놓고
종적을 감추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인연이라고 생각했는지
보고 들은 게 있었는지
뻐꾸기도 어느 날 봄볕에 졸고 있는 사리자에게
아무도 넘보지 않는 자리를 물려주고
심드렁하게 작별을 고했다
길지 않은 세월
적지 않은 인연이 내 곁을 스쳐갔지만
꽃은 꽃이고
나는 나였다
댓글목록
tang님의 댓글

광대함으로 그대 바라보기가 형언되어야 할 강을 만났습니다
죽음도 소실되거나 되박이 하거나 하며 장대한 존엄함이 주는 희열의 강과 마주섰습니다
장엄함으로 생의 힘을 마지막에 두며 혼신의 힘으로 그대를 부정했습니다
형언의 힘에 방점을 주지 않은 죄와 마주섰습니다
사리자님의 댓글의 댓글

tang 님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