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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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내도리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오르면 모래밭, 앞섬
햇빛 깊어지자 낮은 집들이 엉금엉금 하나둘 거북이 되어 햇살에 눕는다 앞섬 강바람은 아이들처럼 모래 한 줌씩 쥐고 민들레 노란 꽃잎을 자꾸 들추어 성가시다 나 이곳 청춘의 기억과 또 다른 기억이 상존하지만 오늘은 그 푸르던 물길만 느리게 추억한다
검어서 머리 깊은 돌 하나 만나 인연이다
주먹만 한 검은 돌은 신석기의 돌도끼 날처럼 누군가 살은 다 털어버리고 얼굴이 뒤틀린 채 실금이 살짝 가 있다
내 귀의 귓볼에 대고 나는 그 돌의 과거를 속삭이듯 묻는다
우주로부터 탈출을 시도했고 떨어져 나온 조상은 지구의 뿌리에서 또다시 탈출하고 싶었다 이후 떠돌다 무주, 이 깊은 앞섬에 모래 속으로 숨었다 비바람과 뇌성벽력이 이곳 앞섬을 무수히 뒤흔들고 지난 뒤 더욱 검고 단단해진 뼈가 드러나 그와 대화를 나눈다
내 귓볼에 닿아 돌의 피부가 강물처럼 다시 돋고 부풀어 내 피부의 기미처럼 친밀해졌다
주변 강물은 예전처럼 다시 세차게 흐르고 나와 마주한 돌의 실금 사이로 아주 작은 꽃을 자꾸만 피웠다 내 흐린 시력으론 어림없지만 새하얀 꽃일 것이다 돌은 그 첫사랑같이 빠르고 짧은 새소리를 지줄대고 있다 그리움은 싹둑 잘라내도 손톱의 끝과 같은 것 첫사랑은 혁명과 같은 것 투쟁의 세찬 강물 같은 두서너 꼬집의 갈등과 칼바람 같은 번민 그리고 고독이었다
나는 강바람과 물소리와 그 돌이 토해내는 언어가 섞여 강물보다 깊고 낮은 이야기들을 온전히 알아듣지 못하고 자꾸 되묻는다 그는 지금 내도리 앞섬의 이야기를 다 말하려는 것일까
누워 이곳 앞섬 마당은 모래밭 햇살이 매우 배부르다
이상하다 내가 무주 산속 깊게 숨겨놓은 섬에 홀로 있다니, 내도리 찬바람이 우지끈 이 시리게 입안에서 씹힌다
이 돌과 잠깐 대화였는데, 일순간이었는데 앞섬은 저 아래 금강으로 쉽게 떠나고 떠나지 못한 이들은 무주 외딴 이 골짜기에 텅 빈 거울처럼 우두커니 남는다
소리인가, 어디선가 고라니가 무주 내도리 이 좁은 산길을 찾아 내려오는 모양이다
댓글목록
콩트님의 댓글

나와 마주한 돌의 실금 사이
누군가의 살은 다 털어버리고 얼굴이 뒤틀린 채 실금이 살짝 가 있는
이제는 그 무딘 신석기의 돌도끼 날처럼
까마득한 그 실선의 각도에 제 손가락을 슬쩍 얹어봅니다.
편안한 금요일밤 되십시오.
이강로님의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