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어떤 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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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떤 생(生)은,
나는 바다 내음이 흘러드는 산 밑의 집에 오래도록 살았으나 바다에 가 본 적 없었다. 도서관이 있는 은행나무 길을 늘상 지나다니면서도 도서관엔 들어가 본 적 없는 아이처럼. 그러니깐 나의 생은 그러한 길이었다. 또 어떤 생은 수없이 읽었으나 행한 적 없는 경구를 외우느라 골방에서 꼼짝 않는 공시생의 하루 같다. 서녘 노을 찾아올 때면 어김없이 바다가 육지라면,을 부르시던 울 아버지 오래전 가을 아침 영영히 가실 때엔 육지가 될 리 없는 바다를 끝내 걸어 가셨을까. 노래는 생을 위해 태어나고 생은 가슴팍 차오르는 노래로 바다가 육지 되게 하는 것. 나는 멀리 갈매기 떼 한가로이 떠 있는 해운대가 보이는 산기슭 작은 집에 오래 살았으나 바다에 간 적 없었다. 어떤 생은 그러나 행복 찾으러 세계를 누비고 또 어떤 생은 행복 찾으러 외딴 동굴 속에 앉아 자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내가 읽었던 수다한 책들보다 공시생이 외우던 경구들보다, 바다가 육지라면,을 부르시던 아버지의 붉은 눈시울이, 견고한 행복 앞에 미루나무처럼 서 있던 진심이었음을, 아버지 떠나시고 나도 아버지 되고서야 알아버렸다. 나는 산등성이 우리 기와집 옆 책들이 갈매기 떼처럼 앉아 있던 도서관에 오래 머물러 궁싯거렸으나, 그 앞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매일 오르내렸으나.
댓글목록
이장희님의 댓글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사람, 저린사람 어울려 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여러 사람이 살고 있지만 비슷하게 살기도 하고, 어느생은 독득하게 살기도 해요.,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깊은 밤 행복하세요, 건필하소서, 너덜길 시인님.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시인님의 말씀이 기다리고 있군요.
늘 자상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좋은 나날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