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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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영원한 광채는
애끊는 어머니의 소리 없는 흐느낌으로
십자가처럼 통곡의 벽에 걸려있다
차마, 다가설 수 없는 고통을 드리운 채
세상의 낡은 율법이 집을 틀다 만
어두운 동굴을 비집고
햇살 하나 깃들어 하늘거리면,
어둠 속에 확대된 동공은 놀란 듯
몸을 사린다
그리움은 서둘러 과거를 불러 모으고
생경하니 드러난 추억은 너무도 강렬하여
차라리 독한 인내로
입술 깨문 아픈 영혼을 힘겹게 추스리지만,
준비된 슬픔에 희석된 애틋함은
더 이상 눈물 쏟을 기력조차 없다
아, 마리아 막달레나
오직 슬픔에 익숙한
그녀의 한서린 동작 하나,
중심 잃은 팽이처럼 온몸으로 휘청이며
멈추치 않는 아픔의 회전을
울먹이는 신음으로 채찍질 한다
그 허전한 절망과도 같은 몸짓 끝에서
텅 빈 수의(壽衣)는 약속의 시간에 등 떠밀려
이제는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또 다른 이름으로 사랑이 된다
두려워 말라며
어두운 사망의 한가운데서,
생명의 환한 빛으로 일어선다
그녀의 눈물진 뺨에,
꿈결 같은 님의 고요한 입맞춤
눈부신 그의 손에 못 자국,
선명하다

기독교의 부활절(復活節)...
나 같은 非기독교인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의 기독교를 성립하게 한 가장 핵심적인
動機的 사건 (Event)으로 여겨지는데
만약 그 부활의 사건이 없었다면 예수님은
그 전에 존재했던 선지자((Prophet)들 중에 한 사람이
진정한 구원의 <메시아>는 될 수 없었을 거다
성경을 읽으면서, 부활에 관해서 한 생각이 드는 건
예수님은 왜 출중한 남성 제자들이 아닌, 일개 소박한 여인 앞에서
그의 부활을 증거하고 그 소식을 세상에 전하라고 했을까 하는 점인데
내 나름으로 생각컨데, 그분이 하늘의 성령(聖靈)으로
여인(聖母 마리아)의 몸에 임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탄생하셨다기에 그의 두번째 탄생(부활)도
여인(마리아 막달레나)의 목도(目睹)를 통해서 이루었단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감히 유추해 본다
- <마리아>라는 같은 이름의 상징적 의미도 있고
그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여인의 전율하는 심경을
나름의 부족한 상상력으로 외람되이 엮어 보았다는...
* 부활절 : [천주 . 기독]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
춘분 후의 첫 만월 직후의 일요일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2024년 부활절은 3월 31일쯤 되겠다. (계산해 보면)
- 안희선
Forbidden Colours - Julienne Taylor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비신자인 안시인님께서
이토록 세밀하게 묘사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처음 만난 마리아 말달레나까지 아신다는 건 더욱 놀랍습니다.
저희 집안은 친가 외가, 고모, 이모님댁 모두 천주교 신자입니다.
신부님과 수녀님이 배출되었기도 하구요.
내일이 부활절인데 부활절에 즈음하여 수난과 부활에 대한 시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돌님의 댓글의 댓글

외람되게 쓴 글인데..
나무람 없이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