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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는 말을 하는 들풀, 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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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소리소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280회 작성일 24-03-06 11:43

본문

말없는 말을 하는 들풀, 그 꽃/ 최은영




   누구의 손길인지 알 수 없는

   잃어버린 의지에 따라 놓인 들꽃을 봅니다.


   금어초禁語草,

   지축을 흔드는 듯 하는 진동에도 

   멀리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에도

   바닥을 붙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언제라도 놓아버리고 싶던

   진절머리 나도록 강렬한 죄의 습성

   그것은 미련일까요?


   사멸한 단어들이 낱 글자로 흩어져, 

   살구나무로부터 불어와 고개를 넘습니다.

   낙과의 단맛에 도취된 잔풀들은 슬피 울며, 울며,

   들꽃들 사이로 쓰러져 버립니다.


   한 겹, 두 겹, 겹겹이 쌓인 둔덕너머로

   아스라이 스친 기억들은

   서로를 향해 괜찮을 것 이라 속삭이며 

   발걸음을 재촉하는군요.


   ‘기억하세요. 당신은 죽었습니다.’


   귀에서 왱왱거리는 소리를 무시한 채

   말없는 말을 하는 들풀, 그 꽃.



   (20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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