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쓰는 편지-2 > 창작시의 향기

너에게 쓰는 편지-2 

 넌 벌써 가을로 채색하기 시작했지만 난 스케치도 끝맺지 못한 캔버스였다 네가 굳이 기억을 더듬어보라던 운석처럼 우연히 만난 눈 시린 청록빛 문장들 잎과 잎사이 우듬지에 앉은 햇살이 그네를 타는 행간으로 요령소리가 짤랑거렸다 나는 멍하니 화면 속으로 찰랑거리는 밥 아저씨의 붓놀림을 따라 걸었다 곱슬곱슬한 머릿결을 지나 유키온나가 숨어 산다는 눈의 언덕으로 손끝이 빗살무늬로 번져갈 때마다 재잘거리는 이야기들 너의 망막 속에 일렁이는 호수면을 따라 숨죽이며 가만히 귀 기울였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물의 장막 같은 시큼하고 짭짤한 너의 비밀일기를 뜨더귀가 된 창호지처럼 몰래 엿듣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