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신의 심해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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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신의 심해 속에서
꿈속에서 끌려온 것일까,
난 지금 심해에 산다.
이곳에는 빛이 없다.
‘흑암의 깊음’*속,
내 삶에 낮과 밤의 구분은 없다.
세월의 등뼈 같은 하루가 없다.
모든 세월이 하루다.
이런 것이 영원이라면 인간의 소망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내가 이곳에서 만나는 늙은 사람들은 거의 모두
나처럼 기괴하다.
세월의 수압으로 일그러진 쭈글쭈글한 외모
내면에 쌓인 트라우마로 머릿속은 해파리처럼 흐물흐물하다.
이곳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투명 인간이다.
빛이 없어 볼 수 없고
소리가 없어 들을 수 없는
우리의 감각 기관은 놀랍게 발달하여 느낌으로 안다.
빛이 없는 이곳에선 스스로 發光해야 한다.
빛이 있는 수면 위에서 빛나던
돈, 지위, 명예, 지식 따위는 이곳에선 반사되지 않는다.
저마다 발하는 괴이한 發光은 發狂이다.
그 발광으로 먹이를 유인하지만
낚아챌 마지막 기력이 없는 탓에
심해의 바닥에 엎드려 흐물흐물한 하루를 보낸다.
* 흑암의 깊음 : 구약 창세기 1장 2절에서 인용한 것임.
번역된 우리 성경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라고 기술하고 있고 영어 성경은 “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로 적고 있음.
이 흑암 속에서 하나님이 천지창조 작업으로 맨 먼저 시행한 것이 “빛이 있으라”였고 그로 인하여 빛과 어둠이 나뉘었다.
성경은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하였으나 깊음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나는 이 깊음을 내 의식 세계, 평생 나를 괴롭혀 온 내 깊은 어둠의 의식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구절을 읽었다. 하나님은 내게 빛을 가져다주셨지만 나는 지금 그 빛과 의식의 혼돈 속에서 노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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