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돌멩이의 주름을 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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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 당신의 이니셜도, 계절도 돌멩이의 주름을 돌고 있습니다.
세월을 건너면서 늘어난 주름의 가닥이 바람에 휘날립니다. 계절의 책장이 펄럭입니다.
봄의 책장을 펼칩니다.
책 속에 어두움을 태웠던 연기 냄새가 자욱합니다. 달빛을 따라 사립문을 넘고 있습니다.
우물가에 뒹굴고 있는 오리주둥이에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 물려 있습니다. 방문을 열고 부엌을 내다보고 있는 노인의 주름이 깊게 파인 손에는 장죽이 들려 있고, 장죽에서는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부엌문 틈으로 갈래머리의 딸이 보이고, 수저가 밥상에 놓이고 있습니다. 멈추어선 벽시계가 묘시의 고갯마루를 넘을 참입니다.
헛간의 부엽토를 뒤지고 있는 어미 닭과 병아리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지나갑니다.
어미 닭이 여름을 쪼고 있습니다.
헛간에 걸린 노인의 베잠방이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어미 닭이 파헤쳐 놓은 굼벵이가 꿈을 돌돌 말고 데구루루 구릅니다.
굼벵이의 꿈은 꼭두새벽 이슬의 맑은 수액을 빨아먹는 것, 그 무렵의 굼벵이는 장수풍뎅이가 되어 세상의 수액을 모두 차지하게 되겠지요.
나무들이 무성해집니다. 배부른 풍뎅이가 트림하며 하늘을 바라봅니다. 사과가 가을을 그리며 수줍어하고 있네요.
슬며시 사과의 볼에 입맞춤합니다. 사과의 타액이 풍뎅이에게 옮아가는 순간, 사과는 가을 앓이를 시작합니다.
에스, 사과가 계절을 건너뛰면서 농익어 가는 사이, 풍뎅이는 사과에 알을 슬고 겨울을 날 차비하고 있습니다. 가을은 또다시 잉태의 몸살을 앓겠죠.
사과가 단맛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태독이 번지는지 얼굴이 누렇게 익어가고 잎들도 더 이상 사과에 그늘을 내주지 않습니다. 잎이 생을 마감하기 위한 서곡을 노래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천방지축이던 하늘이 한 걸음 깊어집니다. 봄을 둘러메고 은하수를 건너던 징검다리는 소낙비가 되어 여름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
강물만 푸르게 푸르게 깊어 갔습니다. 밤이면 안개의 장막을 치고 안갯속으로 자꾸만 멀어져 갔습니다. 은하수가 떠나고 난 뒤에 모두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에스, 우리 사이에 흐르는 물줄기가 서로에게 스며들기에는 아직 익숙함을 더해가야 하는가 봅니다. 소슬한 바람이 옆구리를 찾는 것이 아무래도 겨울의 입김인가 봅니다.
계절의 절벽에서 뚝 떨어졌습니다. 사과가 떨어져 나간 가을의 한 귀퉁이를 잡고 애련에 떨고 있습니다, 서리가 내리는가 싶더니, 사랑해야 할 것들이 시름시름 시들어 가기 시작합니다. 묘지 위의 잔디는 벌써 황금물결입니다.
땡감에 침을 담그듯이 장독을 열고 시름을 넣었습니다. 눈이라도 내리면 시름을 꺼내 당신인 듯 화롯불을 쬐어줄 겁니다. 시름은 언제나 당신을 향한 그리움의 마을에 살고 있으니까요.
울지도 못하는 까치가 당신의 길을 밝히던 마지막 사과를 쪼아내고 있습니다. 세월의 알들이 일제히 알에서 깨어납니다.
에스, 아직도 계절이 웃자란 돌멩이의 주름을 돌고 있습니다.
댓글목록
tang님의 댓글

시안이 건네주는 염정 향한 태동성이 순수의 힘을 가늠하지 않았습니다
시적 영감을 향한 걸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작위적 만들기로 순수와 영감을 테두리화하는데는 이룸이 있었습니다
영적인 활성화에 도전하여 형태화하는 인식의 업그레이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에스에 주체이식을 견인할 존엄함에 생명적 활성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순수와 영감 향해 업그레이드 시 가득한 아득함만 충만했습니다
충만한 아득함을 성령적으로 업그레이드하여 시 전체를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듯 싶습니다
작위적 만들기의 경우 용해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루터기님의 댓글의 댓글

시적 영감을 성령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시해 주신 지도에 감사드립니다.
tang님의 댓글의 댓글

업그레이드하면 그에 맞는 사물감을 다룰줄 알아야 합니다
사물에 대한 연구는 자연과 신성에서도 도출될 듯 합니다
그루터기님의 댓글의 댓글

감사합니다, tang 선생님.
삼생이님의 댓글

상당한 수준의 작품입니다. 놀랍습니다. 제목만 손보면 정말 대단한 작품입니다.
시중에 읽을 만한 시가 없어요 헌데 이 시는 활력을 심어 줍니다.
그루터기님의 댓글의 댓글

과찬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제 글이 좋은 것이라기 보다는 글을 소화하는 힘이 대단하신 것리고 생각합니다.
성숙으로 가는 계절의 초입인 5월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계절의 기운을 받으시어 항상 선생님께서도 운필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