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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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
구름의 머릿결이
손에 잡히는
마을
외진 산꼭대기에서
나고 자란
아내는 나의 꽃나무 선생님
양장 제본의 책에 밑줄 그으며
살기보단
꽃과 나무와 염소와 송아지,
그리고 흐르는 구름과 계곡물에다가
밑줄 그으며 살아온
그녀에게서
나는 사계절 배우며 산다
여보, 그건 살구 열매라고요
매실이라 부르던 내게
아내는 말했다
초록빛에서 주홍빛으로
물들 때까지도
살구를
매실이라 불렀다
여보 고마워
그래
살구든 매실이든
뭐 어떻노
서너 달
매실 옆, 아니 살구 곁
지나다니던 내 맘
아름다움으로 물들였으면
됐지
말씀처럼 깊은 빛
비춰졌으니 고마운 게지
비파 열매는,
매실 열매는,
살구 열매는,
눈을
초롱초롱 밝혀가며
설명하는 아내의 낡은 육신 뒤로
서녘 노을 시나브로 물들고
저만치
살구청처럼 사랑이 익어가고
댓글목록
콩트님의 댓글

밀레의 만종보다 아름다운
사람냄새 물씬 나는 이 세상에 오직
그곳에만 유일하게 울려 퍼지는
저녁종소리가 제 마음속에서 여리게
파문을 일으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