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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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421회 작성일 20-10-22 00:07본문
소나무
어디 먼 길 돌아올 때면
소나무가 가지를 뻗어 솔잎 까슬까슬 돋아난 산봉우리에 눈 먼 꿩 한 마리 날아갔다.
동네 아저씨들이 갓 새끼 난 어미개를 거꾸로
가지에 매달아놓고 죽을 때까지 번갈아 때렸다고 한다.
버너불로 개를 까맣게 구웠다고 한다.
오르막길 황토가 날리는
푸르덩덩한 사과알들이 잔뜩 매달린 향그런
가지 아래 지날 때,
점백이 사냥개가 내 발목을 물고 늘어진 적 있다.
햇빛이 꼬리 끝 타오르는 올챙이처럼
투명한 흐름 안에서 재재바르게 움직인다.
보이는 듯하다가 보이지 않고
예리한 궤적만이 내 망막 안에 남는다.
얼굴이 늘 빨간,
사변 때 가족들을 모두 북녘에 놓아두고 왔다던
해골바가지 아저씨는,
술병에 간이 장독처럼 부풀어올라
흙담 안에서
엎드려 죽었다고 한다.
시집을 품고 다니던
서연이누나는
마을 앞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
물 깊이가 무릎밖에 되지 않는 곳이라
사람들이 이상하다 수근거렸다고 한다.
댓글목록
창가에핀석류꽃님의 댓글
창가에핀석류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누구에게나 까슬까슬하고 언듯 언듯 예리한 궤적 남기는
오래된 페이지 몇은 가지고 있을 법 합니다.
왜 소나무일까를 생각 했는데 역시 그 느낌 그대로 일 듯합니다.
시작이 단편 영화의 도입부 같군요.
눈먼 꿩의 날개가 펼쳐 낸 오래된 일기장 같은 시 잘 보고갑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을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사건들을 목격해왔던 정자나무였습니다. 마을을 떠나왔던 사람들, 떠나간 사람들
다 마중하거나 배웅했던 나무였습니다. 지금은 말라죽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사십년 전 이야기네요.
정자나무 주위로 벌어졌던 사소한 사람들의 역사를 한번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개가 물고늘어졌던 그 흉터가 지금도 아직 종아리에 남아있습니다.
창가에핀석류꽃님의 댓글의 댓글
창가에핀석류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러시리라 짐작했습니다.
사냥개에 물린 발목을 생각하니 마음이 시큼해져요,
코렬리님의 시는 리얼을 바탕으로 그려지는 회화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글을 읽는 동안 옴니버스 영화 한 편 보는 듯하다가
마치 제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한 것처럼 친숙하게 다가왔습니다.
늘 좋은글로 마음을 밝혀주시니 고맙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마을이 완전히 바뀌어서 이런 추억도 글자 그대로 역사가 되버버렸습니다.
고독도로사 마을을 관통해 지나가서요, 지금은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마을이 변해버렸습니다.
원래는 산길을 몇굽이 지나야 들어서는 외진 곳이었는데요.
마을을 위압했던 신령한 정자나무도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보통나무일 뿐이고요.
이제 글자 그대로 지나간 역사이려나요. 그냥 노스탤지어 때문에 써보았습니다.
날건달님의 댓글
날건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예전에 KBS TV문학관, MBC 베스트극장이란 프로그램이 있었지요. 코렐리 시인님 주연의 단편영화, 감상 잘하고 갑니다. 여러 번 읽을수록 여운이 남으니 더욱 좋네요. 외람되지만 제가 시인님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늘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늘 좋은 시,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미 사라진 마을의 역사 - 어찌 보면 마을사람들을 두렵게 했던 물귀신 이야기,
육이오 때 혼자 피난와서 평생 괴로워했던 남자 이야기, 파스퇴르 전기를 읽고 난 후라
개에게 물린 후 광견병 걱정하면서 혼자 끙끙 앓던 이야기
모두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이야기일 뿐 같네요.
날건달님의 훌륭한 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