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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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면 방안 깊숙이 햇살이 날아들던 집.
미루나무 위에서 매미가 청승맞게 울던 집.
할아버지가 긴 담뱃대를 물고 열린 퇴창문 밖으
로 학교에 간 손자를 기다리던 집.
여름밤이면 모깃불을 피워놓고 밤새도록 할머니
의 귀신 나오는 옛날이야기를 듣던 집.
화단에 봉선화, 채송화, 맨드라미, 분꽃이 흐드러
지게 피던 집.
가을이면 빨간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리던 집.
저녁이면 행랑(行廊)에 불을 때 음메-음메- 우는
누렁이의 쇠죽을 끓이던 집.
하루 종일 꿀벌이 왱-왱-거리며 들락날락 하던
집.
늦가을이면 박들이 초가지붕 위에 옹기종기 매달
리던 집.
보름날이면 집 지키던 삽살개가 달에 비춰지는
제 꼬리를 잡으려고 빙빙 돌던 집.
추석이면 마당에서 마을 사람들이 북, 장구, 꽹
과리, 징을 치며 푸짐하게 놀던 집.
눈 내리는 겨울밤이면 화롯불 주위에 동네 처녀
들이 모여 앉아 고구마를 구워먹던 집.
짚으로 새 이엉을 얹으면 집 나갔던 말벌들이
자기 집을 못 찾아 잉-잉-거리며 울던 집.
처마 밑에 매달아 둔 씨옥수수, 씨감자, 씨수수
가 소슬바람을 쐬며 봄을 기다리던 집.
남새밭에서 갓 자란 상추며, 배추며, 열무를 솎
아 먹던 집.
차디찬 우물물 속에 김치를 시지 않도록 담갔다
가 꺼내어 먹던 집.
뒷산 느릅나무 위에서 수리부엉이가 부엉-부엉-
울던 집.
설이면 집 앞 동구 밖에서 동네 아이들이 널 뛰고,
제기차고, 윷놀이하며 놀던 집.
대밭 모퉁이에서 대추나무 도깨비가 불장난하며
놀던 집.
가을밤이면 높디높은 감나무에서 수수감이 툭-
하고 떨어지던 집.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들어차도 세월의
흐름을 가로막으며 목장승처럼 서 있던 집.
야트막한 산 밑에 아기 동산처럼 떠 있던 어릴
적 뛰어놀던 시골집 그립다.
댓글목록
tang님의 댓글

생명의 소산의 일어섬을 향해 묵묵히 하나둘 서로를 향하는 사랑의 얼개
같이 서서 같이 되는 길에 순전한 있음으로의 길이 마련됩니다
하나 둘 생동감으로 천상으로의 초대에 답하려 합니다
소녀시대님의 댓글

좋네요 시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