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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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기차
밤기차는 어느 이국의 도시에서 출발하였다. 그 이국의 도시에서는
한밤중 기차역 지붕에서 까마귀가 울었다. 까마귀 발톱을 가리키며 어느 아이가 울었다. 아이 엄마도 울었다. 역 앞 광장에서는 흑인들이 짐짝처럼 쌓여 잠들어 있었다. 내 어머니께서는 어릴 적부터 홍시를 좋아하셨다. 나는 그래서 내 기쁨이든 슬픔이든 외로움이든 그 속에 빠알간 홍시를 가득가득 담고 다녔다. 허공과 구름과 오솔길과 나뭇잎 살랑거리는 사이 그 어디쯤에서 날아다니던 까마귀가 내려와 홍시의 혈육을 쪼아먹는다. 밤기차는
까맣게 피부 위에 썩은 홍시의 문을 열고, 어린 어머니와 늙은 어머니가 느릿하게 흔들리는 그네에 앉아 함께 바깥을 내다보신다. "어머니, 저 기차는 이국으로 떠나갈 겁니다." "밤의 일렁임이 파동이 되어, 저는 못 견디게 못견디게
떠나가고 싶어요." "각혈하는 네 강철바퀴에 운명이라는 윤활유를 얹으렴." 나는 별빛이 푸르스름하게 내려앉는 바간의 초원에서 가장 높이 솟아있는 검은 탑에 올랐다. 탑의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나는 내 눈알을 하나씩 뽑았다. 다리 세개 달린 까마귀가, 조용히 천공 한가운데 멎은 보름달을 쫀다. 보름달은 혈육을 빨갛게 부풀린다. 부끄런 소리가 숨길 수 없이 달무리에 드러난다. 홍시의 과즙이 뚝뚝 흘러내리듯, 밤기차는 소녀를 이 초원으로 자오선 넘어 데려왔다. 그런데 다시 보니, 소녀가 아니라 하얀 대리석상이 까마득한 탑 꼭대기에 얼어붙어 있었다.
댓글목록
날건달님의 댓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자식의 애달픈 심정이 곱게 느껴지는군요. 올려주신 시를 감상하며 중국의 회귤고사와 박인로의 고시조가 떠오르는군요. 좋은 시, 잘 감상하였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기쁘네요.
tang님의 댓글

자의식의 순화가 거역의 몸살을 앓고 있네요
거역의 힘이 자연에서 왔으면
누구라는 힘과 하나라는 힘이 역설적이지 않게
가치 있게 성결적으로 이행될 듯 합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는 자의식이 없는
둥글둥글한 시를 싫어하고 적극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tang시인님께서 날카롭게 지적해주시니 큰 도움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