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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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다 발라낸 생선 가시처럼
더 발라낼 것 없는
아이가 여기 누워있다.
나는 그 아이의 병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화단 옆을 떠나지 못한다.
그 아이의 병은 나로부터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흙 위에 누운 것은 그 아이를 잡아먹고
얇은 껍질 바르르
봄하늘에 녹아드는 씨앗인 걸까. 그것은 개화하려고
눈 감고 태중에 은어떼 키우는
하구인 걸까. 뜨거운 탯줄이 전설인듯
내 목에 감겨,
나는 싱싱한 물결 속 깊이
가라앉아있는 그 아이의 뼈를
건져올렸다. 내 손 바깥으로 뛰쳐나가려
몸부림치는 그 아이의 내장을 붙잡았다.
나는 그 아이의 병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
화단을 떠나지 못한다. 그 아이의 병은 연보랏빛이나
빛깔이 아예 없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 아이의 병은 곱게
접힌 것이 점점 더 하늘 향해 펴지더니
종국에는 접힌 자국조차
말끔히 펴지게 되었다.
모든 빛깔 너머 투명한 유리컵
밑바닥 세계에는
누가 잠들어 있나.
댓글목록
tang님의 댓글

부정형으로의 길에 자아가 덜 이입되었습니다
자기의 힘이 맹목적이기도 합니다
순수의 힘을 칭송함이 좋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예리하시네요.
지금 몸이 아파서 자아 이입이 참 힘드네요. 제가 봐도
힘이 없는 시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를 써보고 싶어 끄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레떼님의 댓글

"모든 빛깔 너머 투명한 유리컵
밑바닥 세계에는
누가 잠들어 있나."
시인님, 글은 언제 봐도 참 정갈합니다요, 그래서 청초한 순백의 백목련의 느낌이랄까요?
자목련을 읽으면서 흰목련을 떠 올리는 아니러니...
이런 것을 시적으로 뭐라고 정의하나요? 정말 궁굼해서 여쭙니다요,
그리고 제 퇴고 시 한 번 읽어 보셔요 시인님
조언 고려하여 1차 퇴고로 대치하였습니다요
즐거운 주말 지으세요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좋게 보아주시는 거겠죠.
이 시의 아이디어는
자목련이 피어나는 것 - 자목련의 빛깔을 병으로 정의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병은 우리 주변에 만연해있죠. 그러니까 자목련의 빛깔은 우리 주변의 현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목련의 빛깔을 보다가 내 안의 병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역으로 생각해서 내 병이 자목련의 빛깔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하게 됩니다.
내가 자목련의 빛깔을 사랑하는 것이 사실은 내 안의 병을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자목련은 점점 더 펴지면서 빛깔같은 것은 투명하게 바뀌어갑니다.
어쩌면 저 개화라는 것이, 내 병을 초월하여 무언가 초월적인 것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궁금해합니다.
저 투명한 것 밑바닥에는 내 병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있을까 궁금해합니다.
그러니까 저 시는, 아이디어 하나를 끈질기게 붙잡고 변주하고 발전해가면서
내 병에 대해 쓴 것입니다. 아주 작게 시를 쓰는 방법이지요.
이 시의 단점은 힘이 없는 시가 되기 쉽고, 시가 단조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컬러풀한 문장력이 있어야 합니다.
시에 힘을 주기 위해 중간에 제가 의도적으로 삽입한
싱싱한 물결, 뼈를 줍기, 내장을 붙잡기가 있습니다.
레떼님의 댓글의 댓글

아, 그렇군요!
그러니까 , 시작법이 시 영역의 점층적 확장도 있지만, 시 영역을 추상성에서 정황진술로 점점
그 범위를 축소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결론으로 집중하도록 하는 시작 법,
맞는지요?
제 생각에는 시적 영역의 확장보다 시적 영역이 주제를 향하여 점점 축소시키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주로 시적 영역의 확대 쪽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생각해 보니 축소쪽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글을 쓸 땐 그것을 몰랐지만요
또 한 수 배우고 갑니다
역쉬~~~!!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 많이 지으십시요
피플멘66님의 댓글

선생님 길위의 방향을 인지 해 봅니다
선생님이 내려 주신 흰눈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며 운전을 걱정 했지요
모두 옛일 이지만요 ~~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저는 별로 선생님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편하게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히려 이 게시판에 계신 모든 분들이 제 선생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