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갑이 마르는 시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한우 명가와 베트남 노래방 사이 짜투리 공터
빨래 건조대에 겹쳐 널린 목장갑이 마르고 있다
냉동된 햇살 한 짝을 벌려놓고 움켜 쥔 칸 칸으로
저며낸 그림자가 시멘트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목장갑 속으로 손을 들이면 한 손가락도 빠짐없이
바싹 와닿는 가호(加護)는 누구의 것인지,
한 묶음 목장갑에서 한 켤레 목장갑을 빼내면
한 나절이면 피기름에 절어 벗겨질 기도를 하고 있다
쓰윽쓱, 야스리에 칼을 비벼대면 한 눈에 저며지던
기름 줄기와 갈변한 언저리와 부위와 부위의 경계들
하루만 죽여서 눕혀 놓으면 말끔히 손질할 것 같은
찌푸둥한 환락과 게으럼,이것도 저것도 아닌 주제들이
살아서는 두리뭉실 목숨을 접합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두려움이 내가 쥔 칼이라니,
투박한 믿음은 피하기를 기도하지 않아
뜨거운 것은 따스함이 되고
시린 것은 시원해지고
베임은 스침이 되는 응답은 번번히 이루어지는데
피기름으로 떡이지는 사망의 골짜기에서
한 잎 한 잎 붉은 꽃잎을 피워내고
피비린내에서 건진 손을 승천 시키는 것이다.
바람에 날려 떨어진 목장갑 한 짝,
푹푹 삶아도 지워지지 않은 상처에서 피가 흐르듯
긴 실오라기 하나가 풀리고 있다
댓글목록
너덜길님의 댓글

"목장갑, 시멘트 바닥, 야스리, 떡지다,......"
이런 현장감 있는 단어로 날것의 투박한 믿음을 노래하고 있군요.
믿음은 투박해야 맛이 있지요.
그 다음은 승천이 기다릴테니,
다만 내 손에 쥔 칼이 가장 큰 두려움이라니,
참 어려운 생입니다.
또 우리의 시이기도 하구요.
잘 읽었습니다.
젯소님의 댓글

지나다니다 보면 상가 골목에는 한 두개 쯤 목장갑을 가득 널어 놓은 빨래건조대가 있지요.
그기에 어마무시한 시가 널려 있는 것 같은데도 포착이 잘 되지 않아 오래 낑낑거렸습니다.
기껏 잡은 놈이 이것인데, 두고두고 씨름을 해보고 싶습니다.
poet173님의 댓글

젯소 시인님 오랜만입니다
자주 보고 싶네요
젯소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173님! 근데 누구신지 물어보면 결례가 되겠죠? 저를 기억하신다니, 저도 보고 싶습니다.
오영록님의 댓글

좋은시 잘 감상하였습니다.// 기껏 잡은 것이 용의 꼬리도 아닌 여의주군요..//
젯소님의 댓글

아! 오영록 선생님, 과찬이십니다.
자꾸 눈이 그리로 가네요.
우리가 발견해주어야 할 것 같은 보석 같은 삶들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