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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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오는 소리를 기다리다가
그녀는 첫눈 오는 소리 그 자체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녀는 젖은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주홍빛 공간에 벚꽃들이 일렁인다. 그녀도 따라 일렁인다. 이가 드러나는 웃음에 주름이 잡힌다. 첫눈 오기 딱 좋은 날이다. 비단 자락이 서걱거리는 소리처럼 첫눈 오기 좋은 순간이다.
문지방 위에 선 그녀는 얼굴이 길다. 사슴이 끼룩끼룩하는 소리와 함께
눈밭을 걸어가는 듯하다. 그녀가 가는 자리마다 흰 눈을 기다리던 순간이 있었다.
에덴동산에서는 운무 자욱한 청록빛 숲 군데군데 새빨간 기둥들이
정적 속에 고개 숙이고 있다.
내리는 눈송이들마다 그녀의 뼈가 보인다. 나는 그녀의 뼈를 핥기도 하고 빨간 내 볼에 닿는 즉시 녹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복숭아뼈에서 시취가 풍겨왔다.
그 복숭아뼈는 위로 솟아오르기도 하지만,
나풀거리며 멀리 퍼져나가기도 한다. 그녀의 기모노는 젖기도 하였지만
첫눈은 아마 그녀를 멀리 바람 바깥으로 데려갔을 것이다.
댓글목록
날건달님의 댓글

시인님의 모든 시를 좋아하지만, 이 시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네요. 제가 수십 년 전 엔딩크레딧이 스크롤 되고 관객이 물러간 러브레터 상영관 스크린 앞에 홀로 앉아 어쩔 줄 몰라 했던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
코렐리님의 댓글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기쁩니다. 아마 시를 쓰며 제가 느꼈던 것과 같은 것을 느끼신 듯하네요.
저도 러브레터는 참 좋아했는데, 삿포로에 간다면 뭔가
써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미상님의 댓글

바람 같은 시입니다
좋았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