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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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465회 작성일 21-01-12 11:57본문
달빛
어젯밤 유리창 어느 구석에 숨었는지 초승달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청록빛 심연이 슬쩍 방 한구석에서 새어나왔다.
얼굴 없는 사람이 덜 자란 문조 (文鳥) 새싹이랑 차령고개 황토흙이랑 미얀마 황야 이끼 낀 석탑이랑 남해 무인도 밀려온 익사한 여자의 폐선같은 발바닥이랑 섞어서 내 방 천장에 프레스코화를 그리고 있다. 물감이 널 말랐던 어린 나는
풀잎 새에 버둥거리던 방아깨비를 질끈 밟아버리며 웃던 적 있었다. 천장 한가운데에는
우물같은 거울이 있어서 짐승들이 조용히 몰려든다. 석축 (石築)과 색채의 혀가 얽히는 프레스코화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얼굴이 동그랗고 보조개가 움푹
상글상글 웃는 여자다. 그러면 천장이 낮아진다. 내 유년의 흰 살점 너머 은하수 거대한 회전이 작게
들려올 정도로 낮아진다. 등나무 넝쿨이 질식하고 있다. 파랗게 황홀해지고 있다. 그리고
여름비를 맞는 후박나무 가지에 우산 하나가 들려진다. 후두둑 비 듣는 소리도 들려온다. 초승달이 쏟아지는 별빛을 우산 하나로 가리는 대신, 나는 그 여자와 달빛과 함께 예리한 창틀 위를 걸어간다. 멀리서 빈 유리병 안으로 폐선 한 척이 들어가는 소리. 그 여자의
자궁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으로 채워지는 소리. 그 여자의 자궁 속으로 익사한 사내가 들어가는 소리. 무거운 종소리. 달빛 세포 하나 하나 안으로
내가 모를 상징들을 불어넣는 높은 지붕이
고여드는 어둠을 깨끗한 손으로 훔치고 있다.
댓글목록
미상님의 댓글
미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읽으면서 막힌 숨이 확 열리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후박나무의 등장이로군요,,,
깨끗한 손이 상징하는 것은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오늘 시 한 편을 쓰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코렐리 시인의 오늘시 역시 완성도가 높은 성공작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또 배우고 갑니다,,
아참, 저는 시에 마침표를 찍지 않습니다
대신, 쉼표를 찍지요, 왜냐하면 영원성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침표로 영원성을 표현하신다는 말씀은 탁견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