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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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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75회 작성일 21-01-12 11:57

본문

달빛



어젯밤 유리창 어느 구석에 숨었는지 초승달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청록빛 심연이 슬쩍 방 한구석에서 새어나왔다. 


얼굴 없는 사람이 덜 자란 문조 (文鳥) 새싹이랑 차령고개 황토흙이랑 미얀마 황야 이끼 낀 석탑이랑 남해 무인도 밀려온 익사한 여자의 폐선같은 발바닥이랑 섞어서 내 방 천장에 프레스코화를 그리고 있다. 물감이 널 말랐던 어린 나는 


풀잎 새에 버둥거리던 방아깨비를 질끈 밟아버리며 웃던 적 있었다. 천장 한가운데에는 


우물같은 거울이 있어서 짐승들이 조용히 몰려든다. 석축 (石築)과 색채의 혀가 얽히는 프레스코화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얼굴이 동그랗고 보조개가 움푹 


상글상글 웃는 여자다. 그러면 천장이 낮아진다. 내 유년의 흰 살점 너머 은하수 거대한 회전이 작게 


들려올 정도로 낮아진다. 등나무 넝쿨이 질식하고 있다. 파랗게 황홀해지고 있다. 그리고 


여름비를 맞는 후박나무 가지에 우산 하나가 들려진다. 후두둑 비 듣는 소리도 들려온다. 초승달이 쏟아지는 별빛을 우산 하나로 가리는 대신, 나는 그 여자와 달빛과 함께 예리한 창틀 위를 걸어간다. 멀리서 빈 유리병 안으로 폐선 한 척이 들어가는 소리. 그 여자의 


자궁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으로 채워지는 소리. 그 여자의 자궁 속으로 익사한 사내가 들어가는 소리. 무거운 종소리. 달빛 세포 하나 하나 안으로 


내가 모를 상징들을 불어넣는 높은 지붕이 

고여드는 어둠을 깨끗한 손으로 훔치고 있다.      



    

댓글목록

미상님의 댓글

profile_image 미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읽으면서 막힌 숨이 확 열리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후박나무의 등장이로군요,,,
깨끗한 손이 상징하는 것은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오늘 시 한 편을 쓰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코렐리 시인의 오늘시 역시 완성도가 높은 성공작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또 배우고 갑니다,,
아참, 저는 시에 마침표를 찍지 않습니다
대신, 쉼표를 찍지요, 왜냐하면 영원성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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