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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부는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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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끼요오오오옷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30회 작성일 21-01-14 00:05

본문

내려다보인 갯바위엔 낭자하게 뒤덮인 나문재가 계절 감각 없이 붉었다

바닷가 벼랑 끝에서 바람개비처럼

내 영혼의 모습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려 있었고 바람이 준 것만 받아먹었다

눈 시릴 정도로 확 트인 수평선

기이인 백사가 쏴아 모래톱 치대는 울림

외딴섬 그림자를 사랑한 고래의 콧김 파공음에

화들짝 산개하는 철새 떼 총성이 유전자에 각인된 걸까

유구한 요람 앞에선 깊은 욕망도 거품일 뿐

물질의 포로로 산 시력을 멀리 윤슬에 씻어 보낸다

서녘 하혈이 물에 풀려도 묽지 않았다

노을이 진통 같더라니 만삭된 달의 밤

달빛 아래서만 드러나는 조개가 감싸온

진흙 속 진주와 먹칠로 그린 만월이 조응한다

개펄에 맥동하는 구멍서 소라게 기어 나와

달 냄새라도 맡으련 듯 감각모를 곤두세웠다

수류의 모서리가 현이 되어 찰싹일 때마다

그 소리는 언뜻 읽을 수 있게 유리 음표를 반짝였다

밤새 노래하던 바닷바람은 음나무 숲 풀피리를 타고

미치는 구석구석 태고연한 신비경으로 변화시켰다

고뇌를 벗어던진 나체로 세속을 등 뒤에 두자

그 앞은 죽을 자리 삼고 싶을 만큼 평온했다

나로부터 도망친 곳에 차려진 자연의 의미를 다 담기엔

오감의 용적이 넘쳐흘러 참았던 눈물인지

동틀 무렵 낮게 깔린 해무에 묻어난 소금기인지 다셨다

다소곳이 안기는 여명으로부터 불붙기 시작해

잿가루로 흩날린 꿈의 뒷부분과 동시에 조립되는 벽지 곰팡이

내 육신의 처지는 납작한 고독 속에서 무게가 있는 어둠을 받아먹었다

배를 가르면 모르핀 향 짙은 흑진주가 들었을 것이다

신경계가 마비된 후 이어지는 탈력

물처럼 마디를 알 수 없는 몸의 느낌에서 겨우 건져진 손가락 끝

바람이 부는 쪽을 상상한다

아픈 게 없으면 욕심 없이 살고 싶었다

하늘 아래 있는 것만으로 마치 안 굶는 바람개비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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