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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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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순례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87회 작성일 21-01-14 05:13

본문

  

함박눈은 아니고

탐스럽지 않게 어수선하게,

모래알 같은 잿빛 어둠의 가루들이

그래도 겨울답게 소낙비가 아니고 눈이

대량으로 펑펑 쏟아진다

내 귀가歸家를 멈추게 하여

가족과 나를 시간의 안과 밖으로 갈라놓고

쓸쓸함이 떼를 지어 덤벼든다

꽃사슴 한 마리 중앙공원을 횡단하여 사라진다

온갖 애증과 격정의 종말終末을 선언하는 듯

엄숙하게 차갑게 이 도시를 개간하여

밤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마주 보이는 전면前面마다 막아서는

감옥의 두터운 장벽들을

용기 하나로 뚫고 갈 수는 없다

더 이상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윙윙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불협화음 뿐

봄을 준비하는 새싹들의 눈빛도 멀기만 하다

, 눈이 온다, 눈이 온다, 아다모가 노래를 하듯이

길 가던 사람들이 지붕 없는 독방에 갇혀

나비가 되는 꿈을 잃어버린다

집단적으로 고독하게

눈은 이제 사람들의 마을을 완전히 점령해 놓고

자기들끼리 울적하고 허전해 한다

결국은 그들도 벌판의 수용소에 감금된다

그 캄캄한 심연 경비초소에

탈출자를 위한 작은 등잔불 하나 켜져 있다

 

댓글목록

창가에핀석류꽃님의 댓글

profile_image 창가에핀석류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퇴근길에 잠시 걸음 멈춘 군중 속의 고독을 보는 느낌입니다.
아름다운 정서, 잠시 느끼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건안 건필 하시길요~^^

순례자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순례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래 전에 은퇴한 노인이어서 퇴근길은 없습니다.
산책을 겸한 사소한 용무의 외출이었는데
귀로에 눈울 만나 로버트 프로스트를 생각하며 우산 없이 서 있었습니다.
'이 숲의 주인이 누구인지 나는 알 것 같다.' 이렇게 시작하는 그의 시 아시지요?

창가에핀석류꽃님의 댓글

profile_image 창가에핀석류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러시군요. 젊은 감각으로  느꼈습니다.
참 서정적이시군요.
결구를, 나는 아직 잠들기 전 가야 할 길이 있다로 기억합니다만.

순례자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순례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네, 그 시 맞습니다.
눈 내리는 숲의 아름다움이 나를 유혹해도
한없이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고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나는 숲을 떠나야 한다는,
현실의 무게가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 숙연한 문장을 두 번 반복하며 시가 끝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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