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 2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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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꺼풀 벗겨 내린 그 날
진우와 나는 교문 앞 할매 집으로 향했다
마빡에 피도 안 마른 잡놈이라고
구시렁거리며 소주 한 병 날아왔다
손주만 한 잡놈들이 가여웠는지
불알 크기만 한 담치 한 사발
모락모락 김을 피우며 상에 오른다
춤이라면 마이클 잭슨도 울고 갈 진우는
싸움도 곧잘 하는 나의 우상이었다
황순원의 소나기가 운동장을 점령한 어느 날
진우도 소나기처럼 사라져버렸다
겨드랑이에 시집 한 권 끼고 겉 멎든 대학 시절
명지대교 저수지에서 꿈틀거리는
월척 붕어의 어탁을 상상하며
불투명한 미래를 찌에 담아 흘려보냈다
어스름이 저수지에 깔리고
두렁을 타고 다가오는 손전등의 곧은 불빛
뚜껑 날아간 밀짚모자 쓴 낯익은 실루엣이
휙 지나가는데 나도 모르게 달려가 등짝을 후려쳤다
진우였다
물가에는 아지랑이처럼 담배 연기만 솟았고
우리는 40년의 세월만큼 간극이 벌어졌다
오늘 밤
현의 속살을 에이는 활대가
옹이 가득한 내 유년의
그늘을 파고 든다
댓글목록
1활연1님의 댓글

이미지만 보여주는 것 같은데
주저흔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휘어짐과 건짐은
동시성이지만 그 월척이 그늘이군요.
소녀시대님의 댓글

안개자욱한 명지대교 강변의추억을
노벨문학상 노미네이트에 추천합니다
날건달님의 댓글

주신 말씀 고맙습니다.
활연 시인님!
소녀시대 시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