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접 기능사 실기시험
페이지 정보
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8건 조회 439회 작성일 21-02-15 21:44본문
용접 기능사 실기시험
늙은 기계실습 담당 교사가 교과서를 탁자에 내려놓더니 말했다 이제 이론은 끝났으니 실습장으로들 가라 뭔가 아쉬운 뒤끝을 남기며 우리는 실습장으로 갔다 곧바로 용접기를 잡으려는 친구를 제지하며 교사가 말했다 아직 전기를 연결하면 안되지, 줄을 잡고 점박이 쇳조각이 몽돌이 되기까지 줄이 손가락과 하나가 되기까지 줄질을 해라 이윽고 점박이 쇳조각보다 내 손이 먼저 몽돌이 되어버릴 즈음 우리는 땀을 닦으며 냉수를 마시고 참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잠깐의 오수가 끝나고 전등의 반짝이는 가시광선이 눈을 찔렀다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이론은 짧고 실습은 길다고 누가 책 제목으로 썼다나, 아무튼 실습은 길었고 교과서는 한쪽 구석에 처박혔다 몸이 배워 머리에게 주고 머리는 배워 가슴에게로 준다 언젠가 물푸레나무의 배웅을 받으며 저녁 노을을 만나러 가던 길도 그랬다 떨어지고 해진 마음도 용접할 수 있다고 굳게 믿던 패기도 그랬다 그렇게 모든 걸 가슴에게로 바래다주던 몽우리였던 우리, 꽃봉오리가 되든 혹은 혹덩어리가 되든 무엇이든 되어야만 했던 우리, 이론수업이 끝나고 실기시험이 시작되면 한때의 상실을 용접해가며 우리는 쇳덩이를 달구듯 생을 달구어야만 한다 시나브로, 용접 불꽃 속에서도 더운 가슴에게로 가야만 한다고 되뇌이는데, 실기시험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있다.
* 싣딤나무님의 [양장 기능사 실기 시험]에서 제목을 차용함.
댓글목록
날건달님의 댓글
날건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나브로란 우리말이 생각나는군요.
그 시절 참...
잘 감상하였습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는 어제 날건달님의 시를 읽은 즐거움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말씀하신 시나브로를 투입해 보았습니다.
나름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빕니다.
1활연1님의 댓글
1활연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물푸레나무에서 떠오르는 시인 김태정도 아릿하지만,
줄글에서 유장한 시맛을 느꼈습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러하시다니 고맙습니다.
시 쓰는 게 어려우면서도 재미 있으면서 기복이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싣딤나무님의 댓글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가 구노와 바하의 아베마리아를 듣고 있었는데 마침, 이 시를 읽게 되었습니다.
삶의 도처에 깔려 있는 생존을 위한 작은 도전과 몸부림들이 매우 성스럽게 읽힙니다.
몸이 배워 머리에게 주고, 머리가 배워 가슴에게로 준다. 참 좋습니다. 그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 댓글 주셨으니 고백해야겠습니다.
전에 올리신 '양장 기능사 실기시험'이 너무 뇌리에 남아 이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시의 8할이 싣딤나무님의 몫입니다.
늘 건강 챙기시고 잘 지내시길 빕니다.
싣딤나무님의 댓글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ㅎㅎㅎ 날건달님, 저도 어디서 줏어다 쓴거라서 8할 받을 자격이 없어요.
ㅎㅎㅎㅎ 어쨌거나 이름 들먹여주시니까 고맙습니다.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날건달이든 너덜길이든 좋은 시만 계속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싣딤나무님은 저는 물론 다른 이들에게도 분명 시적 영감을 주시는 분이니 더욱 정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8할, 빈 말 아니니 받아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