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터 발끝까지 달콤한 이색의 눈빛을 쏘는 백색 가루로 염색한 발가벗은 육체의 굴곡, 미묘하기도 하고 때로는 구분 짓기도 힘든 교활한 눈알들이 알몸을 더듬고 있었지.
쇠사슬로 묶인 수백 송이 눈꽃들이 배 밑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지. 뿌리가 뜯겨나간 꽃잎들이 사지의 늪에서 두려움과 공포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허우적거리고 있었지. 물과 볕이 부족해지자 시들고 잘려 나간 시린 꽃대를 푸른 산호초에 뿌려버렸지.
카리브해, 그 짙은 청록빛 수면 아래에는 하얀 고깔을 눌러 쓴 꼬리 잘린 인어가 산다네.
* 출처 : 시사오늘(시사ON)
영국 영화 <벨 Belle>은 당시의 모습을 잘보여준다. 영화는 화물로 취급당하며 바다에 버려진 흑인들의 처참한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1781년에 있었던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400명을 싣고 자메이카의 사탕수수 농장을 향해 가던 영국 노예선 종(Zong) 호는 위기에 봉착했다. 항해 과정에서 질병 창궐로 50여명의 노예와 선원들이 사망한 상태였고, 오랜 항해로 인해 식수도 여유가 없었다. 이 때문에 선원들은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 학살하기로 했다.
당시 노예 한 명당 30파운드 가량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보험사와의 계약조건은 노예가 배에서 사망하면 선주의 책임이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게 되어 있었지만, ‘화물’로 취급받던 노예가 바다에서 실종되면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선원들은 이 보험금을 위해 병들어 쓸모없는 노예도 처리하고 돈도 벌고자 했다. 선장의 지시로 선원들은 병세가 심한 노예부터 끌어내 사흘 동안 대서양 한가운데로 이들을 던졌다. 제국주의 시절 돈에 대한 탐욕 앞에서 흑인 노예는 이처럼 짐짝만도 못하게 취급돼 왔다. 이는 불과 200여 년 전의 일이었다.
종(Zong)호 선장은 노예들이 질병으로 인해 사망하자 이를 덮고 보험금을 타려고 했다. 하지만 보험사에서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소송을 걸어 이 사건은 영국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됐다. 당시 보험사와 일부 노예무역 반대 세력들은 노예들이 실종 된 것은 선장의 지시로 인한 것을 증명했다. 결국 당시 대법관은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종(Zong)호의 선장과 선원들이 처벌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사회에서 흑인 노예는 철저히 배척됐다.
하지만 이 비극적인 사건은 영국 사회에서 노예무역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고, 이 판결은 훗날 흑인 노예의 인권 향상에 있어서 터닝포인트가 된 판결로 남았다. 이후에도 노예무역은 이어졌지만 결국 1863년 미국 대통령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으로 노예제도는 점차 사라지게 됐다.
사실 요즘도 보험금 때문에 배우자나 가족을 죽이는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단순 보험사기 사건은 기사로 다뤄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흔한 게 현실이고, 고용보험과 같은 공공 보험 분야에서도 부당 수급이 만연돼 있다고 한다.
새삼 200여 년 전 영국 노예무역상들이 행했던 집단 학살,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