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는 것이기에 이미 모든 것 * * * 시는 내게 있어 공에 대고 본성을 그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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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탄무誕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536회 작성일 21-03-29 22:24본문
아무것도 없는 것이기에 이미 모든 것
사문沙門/ 탄무誕无
이 말에 의지하다
저 말에 의지하고
닿는 곳마다 무명(無明)을 일으키니
생각이 미혹한 그림자,
물아일체, 천지는 나와 한 뿌리
이치로는 이해하고 있어도
인간의 마음과 생각하는 말
개념들이 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에서 오고 있는데도
자신이 붓다임을 꿈도 못 꾸는 사람들,
교학에만 머무르고 있기에
'언어로는 미칠 수 없다' (言語不及)
모든 만물의 본바탕으로서
붓다의 본체는 이미 자신에게 있다
이건 어디로부터 온다든지
어디를 향해 가는 것 아니다
절박하면 잘 들리고
절박함 없으면 전혀 들리지 않는 법
시가 선의 경지에 이르면 시선(詩仙),
시가 선사와 부딪히면 선시(禪詩)
*
*
'언어로는 미칠 수 없다' (言語不及)/
언어와 머리로는 깨칠 수 없다,
언어와 머리로는 붓다에 계합(契合)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제 3의 눈으로 발견해야 하는 체험의 영역입니다.
나기 전 본래부터 있었으므로 발견입니다.
발견과 동시에 붓다의 묘용(妙用)예 의해 바로 계합이 됩니다.
'잃어버리거나, 소유할 수 없다.'
'쳐봐도 쓰러지지 않고, 때려봐도 넘어지지 않는다.'
붓다/
모든 인간(만물)의 본래 성품,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이 달라도 다른 이름에 속지 마십시오.
0이라는 기호는 10개, 100개 나열하더라도
실수인 1, 2, 3, 4, 5, 6, 7, 8, 9가 없으면 0일뿐이지만,
0이 하나뿐일지라도 그 앞에 실수가 있게 되면
10도 되고, 20도 되고, 90도 되고, 무한대이지요.
실수의 본바탕은 아무것도 없는 0이지요.
아니, 0이 있기 전 아무것도 없음이죠.
0만이 인도 숫자입니다.
깨친 선각(先覺)이
이 0이라는 수를 발견(개발?)해냈다고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한 것입니다.
붓다의 본체는 숫자적 개념의
아무것도 없는 0과는 다릅니다.
테두리가 없고, 탁 트였습니다.
미묘하고, 오묘하다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만물을 포섭하고 있습니다.
삼라만상(우주), 모든 만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습니다.
우주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참공부(正法, 우리 인간의 본래 성품) 살림살이 친절히 내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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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내게 있어 공에 대고 본성을 그리는 일
사문沙門/ 탄무誕无
잘못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 아니라
잘못을 모르는 걸 두려워해야 한다
잘못하는 게 뭐가 흠인가
잘못하고 고치지 않는 게
잘못이고 흠이지,
사람은 가면 인정에 가지
윽박에 가지 않는다
사람을 잡으려면
인정으로 잡아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사람이거늘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댓글목록
한뉘님의 댓글
한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구구절절..^^
그저 고개만 숙이고 숙이다
갑니다^^
시를 쓰기보다 시처럼 산다는게 ㅎ
말씀 속에 들어 있네요~~~^^
탄무誕无님의 댓글
탄무誕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차려 올리신 글에 광(光) 나는,
혜자스런 글 맛집 대표 한뉘님
방문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