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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에 가면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23회 작성일 21-04-29 11:13

본문

비자림에 가면 / 백록

 

 


비자림에 가면

지난날 잎 속의 검은 입*들이 얼씬거린다

비 오는 날엔

허기를 빨던 구강기가 목구멍을 적시고

바람 부는 날엔

반항과 방황의 사춘기가 숨바꼭질하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날엔

온통 무덤 속이고

태양은 늘 어둠 속이던

 

비자림에 가면

문득, 여행처럼 돈처럼 황태자처럼

때론, 여종처럼 비방처럼 땀띠처럼 변비처럼

이런저런 사전의 말씀들이 피톤치드와 함께

수두룩 쏟아지지만

 

요즘 떠도는 공황 같은 공항의 소문들로

무지막지하게 톱질하고 나면

울울창창한 천년의 전설은 보나마나

숨통을 조이는 매연에 파묻힐 것이고

마침내, 검은 잎 속의 입들만

들락날락하겠지

 

 

--------------------------

* 기형도의 시집 제목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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