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녀간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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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녀간 이름들
숲속 공원의 메타세콰이어 아래서
한평생이 그새 또 지나갔다는 시를 읽으며 *
나를 다녀간 이름들을 생각한다.
윤희. 순복이. 혜은이. 은영이. 보람이. 소림이.
이런 앳된 아이들을 산중턱 집이며 구포 반지하 단칸방까지
숨을 헐떡이며 바래다주던 내 싱그러운 날들은 이미 스쳐 갔다.
두꺼운 책이 아니라 마음에 밑줄을 긋고 싶었던 시절
전봇대 가로등처럼,
시(詩)는 늦은 밤 내 지친 어깨 위로 다녀가곤 했다.
작년 태풍 때 거진 꺽여 쓰러지고 남은 메타세콰이어 아래
기계톱으로 잘려 가지런히 쌓인 동강이들,
얼마나 많은 바람들이 다녀갔을까.
저 동강이들에게서처럼
언젠가 빈 들에 누운 내 주검 위로 다녀갈 바람에게
내 밑줄 긋던 이름들 다정히 데려와 달라고 조르고 싶다.
숲속 공원의 키 큰 나무들 아래서
한평생이 그새 또 지나갔다는 시를 덮고
나를 다녀간 이름들에게
한번쯤 다녀오려는 내 바래고 해진 마음이
노을에게로 걸어간다.
* : 김기택의 시 [봄 날]
댓글목록
소녀시대님의 댓글

휴업중인 우수한창작의원님으로 추천합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ㅎㅎㅎ, 소녀시대님 이번 최우수작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앞으로도 좋은 시 더욱 부탁드립니다.
이장희님의 댓글

저도 다녀 갔습니다.^^
문장에 힘을 주지 않으면서도 아주 부드럽게 읽혀집니다.
시를 잘 빚으시네요.여러번 봤지만...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필하소서, 너덜길 시인님.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다녀가셨다니 고맙습니다.
시마을에서 오래도록 좋은 시 많이 남기시길 기원합니다.
힐링님의 댓글

그 다녀간 바람에서 수많은 날들의 추억이 다녀간 그곳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쓰러져간 뒤에 남겨지는 이런 짠한 이야기들!
이 뛰어난 감성의 진수에 가슴이 찡해집니다.
너덜길 시인님!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좋은 감성은 좋은 감성과 통하는 법,
그것만으로도 시마을에서 시를 쓰는 의미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좋은 나날 이어가시길 빕니다.
최승화님의 댓글

정윤천 시인의 눈물이라는 우체통 속으로, 라는 시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이미지가 같아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자기검열이라고 생각하시고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단지 분위기를 위한 장치라면 다행이고요.
실례가 되었다면 댓글 지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