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오돌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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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331회 작성일 21-05-29 09:59본문
오월의 오돌또기#1/ 백록
한밤중 우두커니 큰갯물#2 갯바위에서 부르는
홀로 아리랑#3이다
둥그데 당실 둥그데 당실
저기 춘향이 나온다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까나
둥그데 당실 둥그데 당실
사월과 유월의 어간에서 주인 잃은 태왁의 굴메가 흐릿한 각막을 자맥질하고 있다
사무치도록 출렁이는 저 희끗한 물살은
늙은 심장이 울컥거리는
血의 淚#4다
이어도 사나
죽어도 사나
죽어도 살아 한숨을 내뱉는
한오백년의 비바리여
저어 숨비소리여
숨비기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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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주도 민요에서 인용
#2 서귀포시 대포마을 포구
#3 서유석의 노래에서 차용
#4 이인직의 소설에서 차용
댓글목록
김태운님의 댓글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관음觀淫과 또 다른 관음, 그리고 번뇌 / 백록
홀로 두리번거리며 근처의 절을 지나치는데
무슨 재수가 통했는지
아님, 중늙은일 약 올리는 건지
벌건 대낮에 산비둘기들의 흘레를 훔쳤습니다
잠시, 그것도 아주 잠시
적나라한 그들의 정사를 보노라니 인간들의 행위와 별반 다를 바 없었으나
단지, 다른 거라면 주위를 의식하지 않은 의식儀式인 듯
그 자체가 매우 간단하면서도 무척 성스러웠습니다
‘지난날의 나라면 도둑놈처럼 숨어서 별의별 짓거리로 지랄했을 텐데’
라며 중얼거리는데
마침, 이명을 울리는 목탁 소리가 정신을 차리라는 듯 귀청을 쑤십니다
이 색 저 색으로 뒤섞이는 불경의 소리와 함께
언뜻, 전생의 죄업을 죄다 까발리는 듯
‘봐라 아제 봐라 아제’하며 꾸짖는 듯
아차 싶은 이참에 관세음보살을 외어봅니다
잠시, 그것도 꽤나 잠시
겨우 정신줄을 붙들고 보니 좀 전에 색색거리던 놈들
그새, 어디로 날아갔는지
혹시, 헤어진 건 아닌지
어느새, 문득의 꼬리를 문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이 또한 끝내 버리지 못한
번뇌인 듯
김태운님의 댓글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윗세오름을 오르다, 문득 / 백록
- 삼가 구상 시인을 추모하며
1.
고지가 바로 저긴데
그 기슭에서 헉헉거리던 숨통이
기암들의 병풍으로 귀신처럼 그려진 고사목들을 쳐다본다
마치, 옛날의 솟대를 닮았다며
아! 저게 바로 구상의 시로구나
초토의 시로구나
말씀의 실상이로구나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까마귀로구나
저 위로 기어오르면
드레퓌스의 벤치가 날 기다리겠지
어쩜, 개똥밭이거나 유치찬란이거나 조화 속이거나
오늘 속 영원이거나 영원 속 오늘이겠지
혹은, 삶의 보람과 기쁨이겠지
시와 삶의 노트겠지
2.
썩은 폐를 도려내고 혹시나 하며 마음을 졸였던 당신의 절친은
그때 저기 내려다보이는 서귀포에서 소를 그리고 있었지
뒤늦게 문병 온 그와 주고받은 말 몇 마디가
저 낭에 걸렸구나
"자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 누구보다 제일 먼저 달려올 줄 알았는데
내가 얼마나 자네를 기다렸는지 아나?"
"정말 미안하게 됐네. 빈손으로 올 수가 없어서... “
라며 내민 꾸러미에서 꺼낸 그림은
다름 아닌 천도복숭아
"어른들 말씀이 이 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지 않던가
그러니 자네도 이걸 먹고 어서 일어나시게."
당신은 한동안 말을 잊었답니다
과일 하나 사 올 수 없었던
가난한 친구가 대신 그림을 그려 오느라 늦게 왔구나 싶어
마음이 몹시 아팠다는데
당신이 세상을 뜰 때까지
그 그림을 저 백록이 품은 구름처럼
서재에 걸어 두었다는데
3.
어느덧 지금은 오월 끝자락 유월의 기슭
문득, 나를 목메이게 하는 당신의 詩
몇 구절 읊어봅니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