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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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 이야기
점심 먹으러
공장에서 공단식당으로 가는 페인트부스 뒤편 공터엔
정류장처럼 쉬어가는 곳이 있었다.
흰 눈 와서 쌓인 듯한 그 나무 아래서
나는 자주 생각에 잠기곤 했다.
봄에 꽃이 아름다우면
가을에 풍년 든다는 전설, 믿고 싶었다.
공터엔 고철과 푸성귀 무성했지만 아랑곳없이
나무는 꽃을 피워댔다.
봄이 저물어가던 어느날
고철 수집용 5톤 트럭이 큰 무쇠 족집게로 고철을 집어 올리다가
나무를 건드리고 말았다.
뿌리가 흔들린 나무는 그 후로 시름 앓았다.
나날이 물기 빠져나가는
그 밑동 아래
누군가 능소화 하나 가만히 심어 두었다.
나는 식당에 갈 때마다
박제처럼 서 있는 나무와
그를 챙챙 감아 오르는 능소화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것은 흰 눈 대신 분홍빛 눈이 내리는 거라고.
능소화의 시간이 나무의 시간을 덧칠하는 중이라고.
그렇게 능소화의 배경으로
또 소실점으로 조용히 멀어져가던 나무는
하얀 쌀들을 추수하는 꿈을 꾸곤 했다.
그에게 쏟아지던 섬망 같은 생각의 찌꺼기들을
분홍의 꽃잎들이 다 씻어주던 꿈도.
오랜 세월 나무를 바라보던 나는
문득 저물녘 걸어가는 우체부 되고 싶었다.
흩날리는 분홍꽃잎들 우편배낭에 소복이 주워 담아
가을에게로 배달하고 싶었다.
먼 데서 천천히 걸어왔던 가을은
빨간 우체통에서 가져온 나무의 이야기를 밤새워 읽은 후
이른 새벽 나무와 능소화 보러 마실갔다고 한다.
댓글목록
이강철시인님의 댓글

초여름의 시작인데 가을의 얘기군요
허나 시가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은 퇴직하여 볼 순 없지만,
내 마음에 아득히 남아 있는 이팝나무입니다.
그래서인지 기시감을 없애기가 상당히 어렵군요.
가까운 사람에게 어려운 말을 하기가 어렵듯이......
좋은 하루 지내시길요.
이강철시인님의 댓글

이강철시인님의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