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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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339회 작성일 21-07-08 15:53본문
열 살
소년은 길바닥에 손가락 글씨를 쓰고 있었다
넌 학교엘 안 가고 여기서 뭐하니?
교장선생님이 물었다
누런 학교 담벼락을 쳐다보며 나는
엄마가 일 년만 놀라고 했어요,
말했다
고모집 큰형아는 나를 아꼈다
이거 너 먹어라,
고등어를 집어 내게 건네며 웃던 그의 어깨는 산처럼 커 보였다
그 얼마 전 엄마는
일 년만 큰고모집에서 지내거라, 아들아,
자꾸 뒤돌아보는 나를 밀치며 말했었다
구구단을 배우던 학년을 통째로 건너뛰어
인생처럼, 구구단은 늘 어려웠던 소년
그때
소년은 꿈을 자주 꾸었고
꿈은 아침마다 소년을 깨우러 다녔다
네 큰고모가 병이 들었다고 전화가 왔다,
엄마는 오십이 넘은 소년에게 말했다
엄마의 말과 함께
열 살의 풍경이 현관문 안으로 몰려왔다
삼천포 떠나 강릉 살고 계신다는 큰고모
문득
열 살짜리 기억이 오십이 넘은 사내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번 뵈러 가입시더,
짧게 대답하는 내 뒤로 길바닥에 쓰던 그날의 글자가 보였다
어린 손가락이 가늘게 적던 길바닥의 꿈이,
냉커피 잔을 든 오십 넘은 손가락 사이로
열 살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댓글목록
작은미늘barb님의 댓글
작은미늘barb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너덜길 시인님! 첫 문장부터 가슴 저린 그리고 잔잔한 일상의 순간들을 적셔오는
시간 저편의 기억들이 `한번 뵈러 가입시더`로 커피잔속에 녹아들고
열살의 얼굴이 커피의 씁쓸한 맛으로 식도로 미끄러지는 듯 합니다.
아련한 아픔에 커피의 당이 급 땡기는 시입니다.
잔잔히 참 좋은것 같습니다.
잔잔히 음미하며 머물다 갑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를 넘어 화자의 마음까지 헤아려주시니,
너무 고맙습니다.
생이 끝날 때까지,
시인의 마음으로 살다 가고 싶습니다.
오늘은 고기 좀 잡으셨나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월척 같은 시, 많이 건져올리시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