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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세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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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14회 작성일 21-07-17 19:20

본문

  고장난 세탁기 





  세탁기가 퍼져버렸다


  어머니 울상 지으며 나를 부르셨다

  아침 일찍 빨래하려던 계획이 물거품 되어버려

  어머니 얼굴이 세제 거품보다 하얗다


  10년 가까이 달려온 LG세탁기,

  에러 메시지 dE가 암호처럼 떠 있었다

  세탁기 문이 열려있다는 뜻인데

  수십 번을 열었다 닫았다 해도 문은 문제없었다

  문제없다는 피의자에게 문제있다고 다그치는 수사관처럼,

  암호는 나를 압박했다


  서비스 센터 부릅시다,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새끼손톱보다 작고 누런 직사각형 조각이 바닥에 보였다

  개폐감지용 자석,

  문 가장자리에 붙어 개폐를 신호하던 것이었다

  스카치테이프로 단단히 고정한 후에야

  세탁기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담배꽁초보다 작은 그것이,

  내 몸통보다 큰 솜이불을 돌리던 세탁기를 고장낸 것이었다


  내 작은 생각 하나가,

  지구보다 크고 무거운 영혼을 고장낼 수도 있다는 생각,

  들었다


  문득

  지난 생의 땟자국 지워내며 돌고 있는 저 세탁기 속에

  검댕이 밴 내 마음 몽땅 집어넣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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