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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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7건 조회 384회 작성일 21-08-17 14:12본문
사람의 아들
언젠가 안락동 높다란 구름 다리를 걸으며 다리 아래 낮은 시장의 어머니 배추며 부지깽이나물이며 하얀 무 같은 잡다한 채소들 파느라 맺혔을 이마의 땀방울 닦아주던 한 줌 바람을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럴 때면 기억은 갑자기 튀어나와 내가 한 여인의 아들이란 것을, 당신의 이마에 새겨진 여러 겹 주름이란 것을 일깨우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사람의 아들입니다 구름 다리 아래 시장의 맛들을 몰래 훔쳐 먹던 차양막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시장 어귀에 쭈그리고 앉아 라면 박스나 종이 뭉치를 모으고 있는 오후 세 시의 태양이 비추던 노인들, 이를테면 원근법의 소실점처럼 시장의 수채화 속으로 사라지곤 했지요 부끄럽지 말자고, 시래기 매달린 처마 밑에서 바라보던, 종일 비 내려 젖어버린 마당의 고개 숙인 채송화보담 부끄럽지 말자 했지요 그러니깐 나는 당신의 손금인 양 세상을 꼼꼼히 읽고 계시던, 일생 책 한 권 읽지 못한 어머니의 소금 같은 아들이고 싶었습니다 저문 겨울의 절임 배추처럼 풀이 죽은 어머니 늦은 저녁의 골목길 지나오시면 마중물 되어 당신께로 흘러나가던 그날의 어린아이가 떠오르는 이 밤, 하여 김치 냉장고 구석에서 익어가는 배추 김치는 불면증 든 모양으로 잠 못 이루고 나는, 그 옆에 가만히 사랑처럼 누워보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tang님의 댓글
tang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창대한 꿈의 열림에 자기를 놓아본 활홀경이 져가도
모성애와 인간애는 그리 내두지 않는 모양입니다
자기를 자기 있음으로 格을 두는 의무는
필시 사랑과 속과 밖이 되곤 하는 모양입니다
가야하는 명제는 늘상 또 다른 도전이지만
사랑은 그렇게 안과 밖의 플레이는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세상이 주인입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항상 주시는 말씀이 풀기 어려워 난감했는데,
오늘은 좀 난해도를 낮추셨군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늘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tang님의 댓글
tang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있음의 수준을 자기에 맞춰 그런 모양입니다
富나 전통에 맞추면 이전 같아집니다
건필입니다
이장희님의 댓글
이장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영화에 한 장면을 보는 듯 합니다.
잠깐 어릭적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필하소서, 너덜길 시인님.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 좋은 시들을 많이 만나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아름다운 시마을의 기둥 같은 시인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날건달님의 댓글
날건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자신의 속을 채우기 위해 양분을 쓰지 않는 대나무처럼
오로지 우듬지로 자식들 볕 보길 바라시는 어머니!
시를 감상하며 저의 유년 시절을 떠올려봅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늘 속 깊은 말씀을 해 주시는 시인님,
시를 향한 열정 더욱 강해지는 가을이 되고,
앞으로도 더 좋은 시로 빛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