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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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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0회 작성일 21-08-21 09:13

본문

오름 / 백록

 


 

하늘로 솟구치다 말고 우두커니 선 섬

그 섬엔 그 가운데로 우뚝 선 백록이 있다

여름이면 짙은 초록으로 몸을 숨겼다가

겨울이면 당신의 정체를 허옇게 드러내는

산신령 같은

 

늠름한 그 휘하에 삼백예순 남짓의 오름들은

천년만년 늘 제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제 몫을 다하고 있다

날마다 해를 마중하는 일출봉이며

오매불망 둥그레 뜬 달을 기다리는 다랑쉬오름이며

새초롬한 별빛을 품은 새별오름이며

저 멀리 이어도를 꿈꾸는 산방산이며

출렁이는 파도 너머 대륙이 그리운 사라봉이며

나라님을 향한 충정의 어승생악이며

 

그들은 어느 날엔가 문득

하늘로 오르던 오름을 멈춘 채

하염없이 봉긋이 선 채

허구한 날 백록을 우러러보며

그의 심기를 살피고 있다

 

어쩌다 그들 중 하나가 되어 숨 고르고 있는 나도

언제부턴가 백록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

어느 모천의 다리 아래로 뚝 떨어진 내 삶의 행보는

숱한 섬과 오름의 행간 그 자체라며

기다 쓰러지다 서다 미끄러지다

걷다 뛰다 오르내리던

 

산등짝을 타고 기어오르던 먹구름떼가 한참을

뭉기적 뭉기적거리더니

비비적 비비적거리더니

주르륵주르륵 떨어진다

 

시시때때 옥상 난간을 붙들고 선 채로

구천으로 오를 시간만 남았다며

먼 청춘에 목말라하던 어느 늙은이

눈물 콧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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