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몽상夢想/ 백록
요즘 따라 부쩍 늙어버린 난
언뜻, 우물 안 개구리다
간혹, 몸살이 나면 팔짝팔짝 뛰어올라 기껏, 우물가를 기웃거리는 난
한동안 꾸벅꾸벅 머리를 조아리다 구름에 휩싸인 한라산을 우러러보며 당신의 시원 같은 킬리만자로를 떠올리고 있다
그 기슭의 오름들을 둘러보며 적도의 세렝게티며 분화구의 응고롱고로를 헤매고 있다
어느덧 시베리아 들녘을 날뛰고 있을 백록의 족적을 밟으며 사자며 코끼리며 사바나얼룩말이며 톰슨가젤이며 마사이
기린은 물론 대머리독수리 등등, 지금은 저승에서나 어슬렁거릴 것 같은 짐승들을 두루두루 만나고 있다
뭘 훔치는 것처럼 깜짝깜짝 놀라며, 연거푸 식은땀 훔치며
예전엔 졸라대던 새끼들 데리고 쿠릉쿠릉거리는 철새 등짝에 오르면
족히 한두 시간이면 사파리 철장에서나마 만났던 것들이라며
‘세렝게티와 응고롱고로’를 반복하며 코를 골고 있는데
누군가 툭 건드린다. 헛소리 작작하라며
‘아이고, 저 몽니다리 여편네’
이 소리는 사실 소리 없는 아우성
이를테면 코로나를 경계하는 소리랄까
슬그머니 우물 안으로 기어드는
나만의 소리
침잠沈潛의 소리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