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서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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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서 형님
답장처럼 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
말수가 적고 얼굴이 붉었던 사람
서로 살아온 궤적이 달라 처음엔 어색했던 사람
내 아내와 한집에 살겠다고 인사하러 처가에 갔을 때
장모 장인 처형 처남 처조카들과 함께 앉아
술병 옆 안줏거리만 연거푸 씹고 있던 사람
처가 지붕 고치고 철 대문 새로 달고 양변기통 놓고
개집 만들고 서까래 실컷 수선하고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툇마루에서, 어이 장서방 자네도 여 와서 누워 봐,
함께 누워선 감나무 너머 밤하늘 별 바라보던 사람
지금도 그 믿음의 깊이는 내 알 길 없지만
작고 오랜 시골 예배당 부서진 담을 자비로 보수하던 사람
노가다 뛰다가도 다 때려치우고 풍치마을 있는 선산으로
달려가 벌꿀통 돌보며 벌들과 종일을 놀던 사람
글을 몰라 서류 앞에선 꿀 먹은 벙어리 되었지만
글 없이도 오롯이 사람으로 빛났던 사람
어느 날 회사일 마치고 집에 들어선 내게
노래진 얼굴로 아내가 그의 사고를 들려주었을 때
얼굴이 그 붉은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던 사람
사인은 내출혈, 건물 외벽 페인트 작업을 하다가
점심시간 후 무심히 걸터앉은 외줄 의자의 안전장치가 풀어져
스르르 추락해버렸다고, 처형이 울며 말했을 때에도
얼굴이 그 붉은 흙 같은 얼굴이 또 떠오르던 사람
남겨진 우리들
외줄 같은 생 살다 보면 문득문득 생각나는 사람
내출혈처럼, 가을이 찾아오면.
댓글목록
밀감길님의 댓글

마음을 울리는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ㅜㅜ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이 가을, 좋은 시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좋은 저녁 되시길.
이중매력님의 댓글

아픕니다. 산다는 게 뭔지요.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오래전 얘기지만,
가슴에 품고 살다 보니 시로도 쓰게 되었습니다.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열매 많은 가을날 되시길 빕니다.
선돌님의 댓글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많은 연 緣을 맺게 되지만
특히, 가슴 깊이 각인되는 사람도 있지요
그리움으로 새겨진 사람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한 사람을 시로 표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시로 남기고픈 평소의 바람을 용기내어 써 보았습니다.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늘 건강 건필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