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서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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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311회 작성일 21-09-06 15:18본문
윗동서 형님
답장처럼 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
말수가 적고 얼굴이 붉었던 사람
서로 살아온 궤적이 달라 처음엔 어색했던 사람
내 아내와 한집에 살겠다고 인사하러 처가에 갔을 때
장모 장인 처형 처남 처조카들과 함께 앉아
술병 옆 안줏거리만 연거푸 씹고 있던 사람
처가 지붕 고치고 철 대문 새로 달고 양변기통 놓고
개집 만들고 서까래 실컷 수선하고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툇마루에서, 어이 장서방 자네도 여 와서 누워 봐,
함께 누워선 감나무 너머 밤하늘 별 바라보던 사람
지금도 그 믿음의 깊이는 내 알 길 없지만
작고 오랜 시골 예배당 부서진 담을 자비로 보수하던 사람
노가다 뛰다가도 다 때려치우고 풍치마을 있는 선산으로
달려가 벌꿀통 돌보며 벌들과 종일을 놀던 사람
글을 몰라 서류 앞에선 꿀 먹은 벙어리 되었지만
글 없이도 오롯이 사람으로 빛났던 사람
어느 날 회사일 마치고 집에 들어선 내게
노래진 얼굴로 아내가 그의 사고를 들려주었을 때
얼굴이 그 붉은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던 사람
사인은 내출혈, 건물 외벽 페인트 작업을 하다가
점심시간 후 무심히 걸터앉은 외줄 의자의 안전장치가 풀어져
스르르 추락해버렸다고, 처형이 울며 말했을 때에도
얼굴이 그 붉은 흙 같은 얼굴이 또 떠오르던 사람
남겨진 우리들
외줄 같은 생 살다 보면 문득문득 생각나는 사람
내출혈처럼, 가을이 찾아오면.
댓글목록
밀감길님의 댓글
밀감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마음을 울리는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ㅜㅜ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이 가을, 좋은 시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좋은 저녁 되시길.
이중매력님의 댓글
이중매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아픕니다. 산다는 게 뭔지요.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래전 얘기지만,
가슴에 품고 살다 보니 시로도 쓰게 되었습니다.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열매 많은 가을날 되시길 빕니다.
선돌님의 댓글
선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많은 연 緣을 맺게 되지만
특히, 가슴 깊이 각인되는 사람도 있지요
그리움으로 새겨진 사람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 사람을 시로 표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시로 남기고픈 평소의 바람을 용기내어 써 보았습니다.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늘 건강 건필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