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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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거동에도 헐떡인데 짖을 힘 어딨어 누가 누굴 지키겠나
설 힘도 매번 있는 게 아니라서 지인이 와도 마중을 거른다
어느 날은 기운 탔는지 제 발로 나서더니
집 앞도 못 가 접질려선 도와달라 쳐다만 보더라
나들이는 요원해져 낙이 오로지 먹는 낙밖에 안 남았건만 이가 또 엉성하다
자양분이 없어 기생충도 떠난 몸이다
오줌이나 찔끔찔끔 새고 괄약근 약해져 아무 데나 똥 한 덩이 빠트리는 그야말로 애물단지다
해도 아니고 달도 아니고 주가 다르게 늙는다 곧 하루가 다르게 늙겠지
죽음을 이해하느냐 아쉬운 마음에 쓰다듬으며 말은 안 통하니 눈을 봤다
붉게 처진 눈을 더 가까이 보려 코에 코를 대자
속병 냄새 묻어나는 혀로 얼굴을 핥아온다
그저 덜 앓고 잠드는 게 그날 복이구나
너는 짧게 사는 가족이다
백 년을 함께 못 살아도 수명은 가족의 조건이 아니다
댓글목록
삼생이님의 댓글

정말 좋은 시입니다. 저도 개를 오랜 세월 키워 보았지만
이렇듯 진심어린 속내를 글로 쓰진 못했는데 시인님의 이 시로
위로를 받습니다.
일신잇속긴요님의 댓글

노견을 부양하면서 제가 힘든 게 있지만
다시 생각하면 가장 힘든 건 역시 늙은 개라고 긍휼히 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