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를 걷는 예수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바리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9회 작성일 21-11-17 00:04본문
파도를 걷는 예수
퇴근길
소금에 절인 꼬부랑 할머니가 좌판에 떠리미로
고등어 한 손을 팔고 있다 검은 비닐봉지 사이로
배죽배죽 삐져나온 등가시들 저 비린내 나는 구
겨진 오늘을 머리에 이고 예수가 집으로 돌아왔
다 거실 한쪽 모퉁이에 류마티즘을 앓는 냉장고
속으로 오늘 하루가 얼어붙는다
새벽녘 창가에 수줍게 손 가리고 웃던 첫사랑 햇
살도 저물녘 고린내 나는 축축한 양말 속으로 증
발해버리고 예수가 욕실에서 지우개처럼 샤워기
꼭지를 비튼다 온종일 동서남북으로 못 박히며
돌아다니던 누더기 걸친 백발의 예수가 온몸에
핏물 밴 자국을 너덜너덜해진 손가락 사이에 낀
검붉은 땟물을 말끔히 씻어낸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턴테이블 위에 놓인 오래된 바늘이 등지느러미
에 긁힌 비늘 같은 하루를 한 겹 떼어내고 붉디
붉은 말간 속살에 안티푸라민을 살갑게 발라준
다 소금에 절인 고등어가 냉장고 문을 열고 나
와 불 꺼진 방 안으로 쏜살같이 미끄러진다 푸
른 파도가 밀려오고 예수가 파도의 경사면을 걸
어간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