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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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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바리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2회 작성일 21-12-03 00:41

본문

투구꽃


1.

그녀를 보셨나요?

뒤란의 장독대에는 맨날 그녀가 곰팡이처럼 하얗게 피어올랐어요

장독 속에는 곰팡이 핀 그녀의 문장이 숨어 있어요

오늘 아침, 그녀가 짜고 맵고 쌉싸름한 문장들을 숟가락으로 걷어내는 것을 보았어요

장독대는 그녀의 식탁인가 봐요

그녀가 식탁에 앉아 조용히 먼 산을 바라보고 있어요

한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모르핀 같은 거예요

그녀가 바륨 몇 알과 문장을 바꿔버렸어요

반들거리는 장독대에는 꽃을 잃어버린 새순이 연보랏빛으로 피어올랐어요 


2.

유키(雪), 잘려나간 발가락들이 후드득 떨어져내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꿍꿍이를 꿈꾸곤 하지

달지 않은 감주처럼

피에로의 미소처럼 

재채기를 감춘 폐부 속에는 눈송이가 쿨럭거리고 나는 새파란 하늘 속으로 뽀얀 얼굴을 파묻는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 같은 설원의 발자국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새하얀 앞니 같은 눈발이 영희의 발목이 묶인 검정 고무줄처럼 

후드득 후드득 시퍼렇게

날선 면도날 위로 얼어붙은 서릿발로 사뿐히

내려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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