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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무덤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이영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773회 작성일 21-12-09 10:51

본문

안개 무덤

 

이영균

 

그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가볍고 촉촉한 그는 내 어깨에 무겁게 내리는가 싶더니

절벽도 강물도 모두 품어버린다

 

나의 의지와는 별개로 새벽은 그의 세상이다

나는 그의 애무에 나의 아틀리에로 가서

그를 맞이하는 오페라 가수가 되어 리듬으로 카펫을 깐다

 

나의 얼굴을 애무하며 짙고 차갑게 나의 입술에 키스를 하며

숨죽였던 나의 종족들의 육신을 하나둘 어루만져

꽃 같은 산책길의 아침을 개을리 펼쳐간다

 

한순간 어마어마한 그의 퇴장은 터무니없이 흐물흐물해서

아침 엷은 햇볕에 간간이 나무 손가락 끝 이파리의 이슬로 남아

사력 다해 마지막을 반짝거린다

 

그의 짙고 차가운 사랑의 고백은 차라리 엄숙했으면 싶었지만

결실도 없이 애무를 풀며 사라져

아련함으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대신한다

 

아련함이 남는 건 그도 그럴까?

그의 태생은 알 수 없지만 그의 습성에 나는 어느새 젖어있다

나를 품은 그의 마음이 저렀듯 아득하여도

나는 그의 포옹이 시나브로 아쉽다.

 

그의 사라짐을 쫓는다

나의 쫓음은 안중에도 없는 그는, 나를 조롱하듯

절벽을 오르고 강을 건너 어느새 사라진다

 

그의 생이 잠시 잠깐 내게로 왔을 뿐 나와 무관하듯

나의 생도 먼 훗날에는 그와 같음을 




 세상은 무한한 듯 살고 나면 한낱 허상에 불과한 안개 무덤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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