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먹어보고 싶은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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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307회 작성일 22-01-13 02:44본문
나무처럼 조개처럼 나이를 먹고 싶어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더 크고, 여유롭게 둥글어져
이전의 나이들이 다 품어지는 나이를 먹고 싶어
나무처럼 제 안에 나이를 감추고
조개처럼 나이 안에 저를 감추고
조용히 나이값이나 하며 살고 싶어
한 살 먹을 때마다
그래도 잘 살았다고 동그라미 쳐 줄 수 있는 나이,
단면을 잘라보면 점점 후해지는 동그라미들이
곧 내 품이 되는 나이를 먹고 싶어
사백오십살의 조개처럼 점점 더
물오르는 내면을 오히려 나이가 지켜주는
외강내유의 나이를 먹고 싶어
먹으면 이가 닳고 심신이 구겨지는
늙은 개와 사람의 나이를 물리고
아무리 먹어도 안쪽에 때가 타지 않는
나무와 조개의 나이를 먹고 싶어
한 살 더 먹을수록 꽃이나 잎이나
더 무성해지고 그늘이 깊어지는,
한 살 더 먹을수록 더 깊은 바다로 들어
갯벌에 더 큰 족적을 남기는
하늘이 동그라미 쳐주어 아는
그런 나이를 먹고 싶어
갈수록 더 편협해지고
기슭으로 점점 밀려나는 형상이 아니라
갈수록 널널해지고
울림이 커져가는 형상이 되고 싶어
아무리 먹어도 숫자에 불과한 나이가 아니라
먹으면 먹을수록 숫자가 지워지고
아우러는 테두리가 선명해져 가는 나이
죽어가는 표시가 아니라
살아가는 표시가 나는 그런 나이를 먹고싶어
한 살 더 먹는게 징그러운 것이 아니라
맛이 좋아서
한 살 더 먹을 때 지금껏 먹은 것보다 더 크게
목젓에 닿도록 한 입 가득 깨물고 보는,
나도 그런 나이를 먹어보고 싶어
댓글목록
이장희님의 댓글
이장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인님 시를 감상하면서 저도 그런 나이가 먹고싶은 맘이 듭니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때로는 두렵고 했는데
오십이 넘어가면서 그러러니 합니다
마지막 연이 근사하면서 공감이 갑니다.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필하소서,싣딤나무 시인님.
싣딤나무님의 댓글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 시인님! 답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바빠서요,
이렇게 쫓겨살다 쫓기지 않을 때가 언제 일까요?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