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를 고쳐 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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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를 고쳐 매다
하늘시
석양을 지펴 놓은 저녁 골목길에
그늘을 불려 어둠을 끓일 때
내일 아침 해는 고들할까 질퍽할까
어둠과 그늘이 뒤섞이면
핏물이 눈물에 용해되어 시신경의 창가에 울음 한 방울 비치고 말거라는
비는 줄기의 끝단을 잡고 매달리는
대지의 가슴에 줄기차게 못 박을 때
어떤 환희의 물방울을 감동시키지
젖는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는
오랜 슬픔을 벗어 난 저수지는
인연이 닫지 못하게
만연한 그리움을 가두어 놓지
바람의 멍에를 짊어 진
모든 흔들리는 것들을 푹 찔러넣은 호주머니는
몇알의 동전을 거머 쥔 손톱을 물어 뜯으며
멍 때리는 눈알에 박힌 우산의 레코드를 돌린다
질문없는 대답에 질 질 끌리며
나를 당기는 느낌표는 무엇일까
아픈 골목길 쿨럭거리는 기침을 다독이며
고독한 돌담 동그랗게 끌어안은 수국들이
흙탕물을 우려 슬리퍼를 끓인다
그저, 꿀꿀 땅만 보일 때
신발 끈 고쳐매라는 아버지가 하늘과 땅의 짝짝이를 바꿔 신긴다
흙수저를 내려놓은 슬리퍼가 하늘을 밟고 땅을 올려다 본다
슬리퍼의 메아리가 아버지를 신는다
질퍽질퍽 울먹이며 골목길이 따라온다
신발끈을 고쳐 맨 슬리퍼가
발바닥을 뜨겁게 지진다
고들한 흙탕밥에 누룽지가 눈다
댓글목록
grail200님의 댓글

하늘시 시인님,
충고한 글을 관심으로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늘시님의 댓글

가장 쉬운것이 타인을 충고하는것
가장 어려운 것이 자신을 아는 것
이라는 에세이를 읽은 적 있어요
올리신 시 잘 읽고 있어요 그레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