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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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 노천명에게
초봄.
산갈대가 능선을 따라 군데군데 들꽃을 숨기며 눈길 닿는 저
끝까지.
내 가는 길이 저 산갈대들 속 그 어디에 숨었는지 몰라. 수풀 사이를 기어가는
작은 뱀. 비늘 위에 아로새겨진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소리. 내 가는 길은
저 뱀이 뱉어 놓은 뜨거운 침인지도 몰라. 예리한 바위가 벼랑을 이룬
저 산으로 오를까, 새빨간 벽돌 수도원 투명한 물 솟아 오르는
등나무 넝쿨 무성한 중세의 그늘로 갈까. 은빛 찬란한
비늘, 나는
등나무 꽃 위에 석각(石刻)된 벰이다. 그리고 그 등나무꽃은
산바람에 잠시도 쉬지 않고 흔들리는 중이다. 베르테르의 관자놀이에
빠알간 태양의 흑점이 있다. 중심을 향해 소용돌이치며
불 붙은 내 오후가 세차게 빨려 들어간다. 새하얀
조개껍질 위에
위태로이
서서
군데군데 내 피가 무심히 지나
가는 저 눈부신 오후에
묻어 있어.
댓글목록
콩트님의 댓글

언제부터인가
아리아를 들으며
자다 깨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 적막의 침묵 속에서
오페라 리날도의 Lascia ch'io pianga처럼
자유를 소망하는 알미레나의 절규처럼
<오후>란 시를 읽으며
제 詩가 가야 할 길을 들여다봅니다
좋은 밤 보내시길 바랍니다.
코렐리 시인님!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grail200님의 댓글

나날이 자연스러워지는 문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길고 부드럽게 쓰는 연습을 한다면 일취월장 괄목상대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