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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10년노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2회 작성일 22-07-23 23:49

본문

방을 어지럽히는 건 지독하게 들러붙는 여름이었다 

열기가 머리를 가득 채우면 순서를 해깔리기 시작하는

1에서 100까지 숫자들이 뒤부터 까먹어 들어가곤 했다

해가 달에게 먹히고 책상 위에 엎드려 조각달에

내면을 보며 얇은 막처럼 둥둥 떠다니는 물고기들의

울음을 배우고 있었다 깨어나기 위해 주먹으로 벽을 쳐대자

천둥소리가 길게 이어지다 사라지곤 했다

같은 소리를 내는 것들에게서 같은 심장소리를 들은 건

그때부터였다 물 밖을 기어 나와 처음으로 사람을 먹었다

지독하게 살아남은 걸 위장하기 위해 뼈까지 씹어 먹었다

오도독 소리가 났다 기억은 메신저처럼 삭제가 가능하다

살해라는 말이 낯설었지만 살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자

곧 익숙해졌다 한참을 같은 길을 걸었고 비처럼 이곳저곳

핏자국이 튀었다 살해라는 말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살인자가 되었고 살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은

순진한 사람의 눈빛을 보였다 택배 배달원도 돼지국밥집

사장도 못생긴 노파도 하나같이 순진해 보였다 

단지 어둠 속에 존재를 묻는 나의 질문에 대답하는 건

나의 광기였다 기억은 현재를 미래로 먹어치우는

힘이 있다 단지 피가 고팠다면 닥치는 대로 길거리를

돌아다니지 않았겠지만 사람을 씹을 때 소리가 들리면

내 속에 심장이 같은 박자로 뛰는 걸 느끼곤 했다

지옥을 눈앞에 두고 할 수 있는 건 별게 없었다

기억을 지우는 건 불가능했다 순진한 척 살아있어야

했으므로 그렇게 했고 어느새 방안이 차분해지고

신은 내게도 존재했으므로 그 해 여름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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