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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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302회 작성일 22-11-08 22:25본문
야간 근무
지난번 태풍에
정문 곁 백일홍 흐드러진 빛들은 사라졌지
바람이 불면,
노래든 시든 이야기든 바람이 불면,
이라고 읊조리며 사람들은 하루를 시작하곤 하지
꽃봉오리 같은 아이들의 웃음이 잠들고
꽃받침 같던 엄마의 시간표가 곤한 하루를 마치면
아파트의 밤은 고목이 스러지듯 온다
고마운 경비아저씨께,
조그마한 손으로 편지를 주었던 아이들에게
한 점 계산 없이 써 내려간 말간 편지들에게
나는 찡한 눈물을 숨긴 눈웃음을 건넸다
고마운 너희들에게,
실은 이런 게 사는 즐거움이란다
이게
삶이라 생이라 부르는 이유란다
찬바람 불어올 즈음
꽃잎들 떠나간 백일홍 가지들은 부르르,
몸서리치겠지만,
그래
별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시인은 시를 쓰고
별을 지키는 마음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나는
답장을 적어야겠지
살다 보면
서릿바람 칼날에 베인 아뜩해진 마음이
잠시 하늘의 별들에게 맡겨둔 편지를
꺼내 볼 날도 올 테니깐
나의 편함이 네겐 불편함이 되고
나의 불편함이 네겐 편함이 된다는,
이 한 가지 생각에 겨운
이 밤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의 [서시]에서 인용함.
댓글목록
창가에핀석류꽃님의 댓글
창가에핀석류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랫만에 따듯한 시를 접하게 되어 훈훈합니다.
잘 지내시죠?
이 풍요의 시대가 결핍을 앓는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합니다.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고맙게 읽고 갑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말 오랜만이로군요.
모두들 잘 지내시는지,
얼마전에 아이들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그게 저를 무한 감동으로 물들게 하더군요.
사는 즐거움이 이런 게 아닐까 싶구요.
아무튼, 하얀 눈 쌓인 마음들 되시길 바래봅니다.
석류꽃님도 건필하시구요.
작은미늘barb님의 댓글
작은미늘barb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인님!오랫만에 뵙습니다.
시원하고 좋은 바람을 만난듯 머물렀습니다.
별에 접어둔 편지를 펼친듯 맑아지는 마음
붙들고 갑니다.
항상 건필하시고 내년에는 자주 뵙도록 하겠습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해운대 지나 청사포까지 걷기 운동하고 들어오니,
반가운 작은미늘님이 글을 남기셨군요.
너무 반갑습니다.
바다에 담가두신 시, 언젠가 건져올리시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시로 늘상 화답하는 나날들 되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