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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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271회 작성일 22-12-22 11:26본문
가라앉은 달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어젯밤 우리 아파트 단지 마당에 달이 가라앉았더랬습니다. 늘 깡총 뛰어다니는 작은 털뭉치 말티즈도 마악 걸음마를 뗀 이웃집 소녀 정아도 마침 함박 내리던 눈송이들도 모두 이를 목격하였습니다. 어머니 혼자
누에고치처럼 작은 방안에 앉아 괴로워하셨습니다. 나는 눈썹 밑에 종기가 돋아났습니다. 흐릿하게 흘러가는
적요함 속에서 달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꼬리부터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전쟁을 겪으셨다 했습니다. 인민군이 집에 쳐들어와 황소 한 마리를 징발해가려 하자, 늘 유순하시던 외할아버지께서 가슴팍을 내밀며 날 쏘아죽이고 가져가라고 대드시던 이야기. 어머니 기억 속에서는, 달의 빛을 올올이 풀어 짜내야 할 뜨개질감이 늘어납니다. 무생물처럼 썩어가는 뜨거운 것들이 나뒹굴고 있습니다. 작은 티스푼을 달 위에 놓고 빙빙 저으면 흰 우유거품이 살포시
어둠의 표면 위로 피어오릅니다. 나는 창을 조금 열어두고 마당 한가운데 조용히 정지해 있는 원형의 달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 모든 파도가 내게 몰려오는 그 수평선 바깥에 내 누이가 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찢어진 배와 찢어진 자궁을 내게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여기 깨어지고 있는 유리병이 있습니다. 한쪽 모서리가 약간 땅으로부터 들려 있는 달은, 자신의 빛나는 표면 위로 보이지 않는 길이 저 아스라이 영원 바깥까지 뻗어있다는 듯 그러나 쇠창살에 얼굴 반 편이 찔린 누이는
경련같은 미소를 내게 짓고 있습니다.
아들아, 저 길을 가라. 방안으로부터 어머니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대지가 조금씩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달빛은 서서히 아카시아나뭇가지며 녹 슨 창틀이며 차갑게 날 노려보는 은횟빛 미끄럼틀로 번져갔습니다. 나는 간질병의 경련과 황홀 속으로 조금씩 발을 내딛었습니다.
밤하늘 위에 조용히 달이 떠 있었습니다.
댓글목록
콩트님의 댓글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혼잣말 같은 텅 빈 저의 가슴팍으로
달빛 묻은 은빛 시어들이 꼬리지느러미를 파닥거리며 파고듭니다.
좋은 시, 잘 감상했습니다.
강녕하시길 바랍니다. 시인님,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피탄님의 댓글
피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항상 문장력이 부럽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과찬이십니다.피탄님의 시 항상 감명 깊게 잘 읽고 있습니다.
이장희님의 댓글
이장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예전에 비가온 뒤 허방에 빗물이 고여 있었는데
그 안에 달이 가라 앉아 있더군요.
공감 하고 갑니다.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좋은 표현에 깜짝깜짝 놓랍니다.
늘 건필하소서, 코렐리 시인님.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늘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장희님의 시 아주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