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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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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227회 작성일 22-12-23 00:34

본문

단추구멍 




내 옷에는 불필요한 단추구멍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집 고양이는 

이 단추구멍들을 통해 세상을 보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고양이의 수염을 따라 전류가 흐릅니다. 진홍빛 금붕어들이 물밖에 나와 팔딱거립니다. 금붕어 망막 안에는 더 작은 치어(稚魚)들이 무리져 헤엄쳐 다닙니다. 나는 단추구멍을 통과하여 내 유년시절이 둥그런 유리항아리를 이룬 오후로 들어갑니다. 내 등이 서서히 굽습니다. 말기암을 닮은 테이블이 있습니다. 우리집 고양이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새하얀 벽지 위에 예리하게 새겨진 말기암을 읽고 있습니다. 바닐라 라떼의 향기를 읽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마침 우리집 시계가 서버렸군요. 얼굴이 온통 시큼한 레몬크림 투성이입니다. 시침이 분침으로부터 너무 떨어져 있습니다. 시침과 분침 사이에 몇개의 계절이 흘러갑니다. 고양이와 나는 대리석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습니다. 내 눈동자도 저렇게 샛노란 빛깔이고 중심에 빙 빙 돌아가는 우주가 있고 검은 석관으로 그 중심을 단단히 닫았을까요? 당신은 천 겹이나 되는 서로 다른 감촉의 고통들로, 씻겨지고 또 씻겨진 근친상간의 한 페이지가 맞습니까? 에곤 실레의 절규를 타고 묘안석(猫眼石)으로 만든 나선계단을 높이 올라갑니다. 에곤 실레의 누이가 다리를 벌리고, 나를 향해 오줌줄기를 힘차게 쏘아 올립니다. 더 오를수록, 공허한 우주의 소리가 내 귓속에 모여듭니다. 생명의 나무 위에 박힌 단추구멍들을 하나 하나 호흡해 보는 것입니다. 좁지만 길게 벌어진 상처 속으로 거대한 단추 하나가 또 들어갑니다. 채워지지 않는 꽃병 하나에 죽음 하나씩, 그러니까 내 고립된 방 안에는 지금 아홉개의 꽃병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셈입니다. 


         

댓글목록

이장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이장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할 일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왜 못해 봤는지 쩝~
순간포착 하시느라 수고 하셨어요 ㅎㅎ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필하소서, 코렐리 시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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