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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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255회 작성일 23-01-03 19:16본문
눈 내린 길을 걷는다
서류의 끝과 끝을 겹쳐서 찍고 또 찍은 인감처럼
무슨 큰일이라도 내려는 듯이 찍히는 발자국들
얼마나 따뜻한 날들만 살아서
나는 변변한 발자국 하나 없었던가?
뒷걸음쳐서 신어도 될 것 같은 발자국 한 짝,
갈대를 깍아 썼다는 쐐기문자가 한 페이지인데
뜻을 굳히기 위해 불위를 걸었을까?
점점 굳은 살 박혀 가는 발바닥이
아직은 말랑한 점토판 같아
동상 걸린 발볼을 손톱으로 꾸욱꾹 누르고 누르면
천년이 지나도 흩어지지 않는 문장 한 줄 새길까?
시간처럼 눈이 쌓이고,
두려운 발을 짐승의 가죽으로 싸매고
뽀드득뽀드득, 신발 밑창만 으깨며 걷는다
녹은 눈이 천년처럼 흐르면 흔적도 없을
남의 문장을 베끼고 또 베끼며 걷는다
눈 내린 길을 걷는다
멀리서 보면 누군가 비뚤비뚤 끌고 가고 있을 문장,
글자 한 자마다 천년의 상처를 품은, 그래서
나는 눈 내린 길을 걷고 또 걷는다
댓글목록
싣딤나무님의 댓글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모두들 안녕하신지요. 올해 부터는 1일 1편 시를 쓸 야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시가 되게 살고 싶군요. 새해 복들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너덜길님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일터에서 돌아와 시마을 둘러보다가
너무나 반가운 이름이 첫눈처럼 내 속으로
들어왔답니다.
'얼마나 따뜻한 날들만 살아서
나는 변변한 발자국 하나 없었던가?'
훅 들어오는 일갈에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시의 피부와 심장이 여전하신 것을 보니,
참 안심이 되고 좋습니다.
올 한해 두고두고 그 발자국 위에 저의 발자국을
얹어보아도 괞찮겠지요.
건강, 건필을 빕니다.
싣딤나무님의 댓글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이구! 이게 누굽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하도 오랫만에 와서 모두 잊으셨나 했는데,
정말 지금의 제 표정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글썽글썽 빛나는....
참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다시 시를 쓰기로 해야 할 만큼요.
건강하시죠?
오랫만에 쓰보는 것이라
참 힘도 들고, 한심스럽기도 했는데
좋게 읽어주시니, 힘이 납니다.
새해에도 시 많이 씁시다.
늘 시를 안고 살아갈 수 있는 이것이 복인것 같아요.
이장희님의 댓글
이장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인님의 예리한 문장을 오랜만에 감상 합니다.
어디하나 작은 것에 소홀히 하지 않으시는 시인님에게
뭔가 배울 것 있는 시로 남을 것 같네요.
좋은 시 잘 감상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늘 건필하소서, 싣딤나무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