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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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85회 작성일 23-02-10 00:06본문
새총
해 질 녘
청바지에 흰 블라우스 입은 소녀의 자전거가 내 망막 속으로 일방통행을 하더니 지평선 너머 서쪽 하늘로 이륙하고 있었다
초저녁별처럼 슬그머니 솟구친 큰부리까마귀 떼의 활강이 저물어 가는 태양의 허리를 반으로 잘라내고 있었다
여름이었다
풍랑을 헤매다 떠내려온 떼배 같은 툇마루에서 할머니를 베고 눕다가 모시 적삼 속으로 움켜쥐었던 내 유년의 깡마른 기억들
빈 마당 바지랑대에 앉은 빨랫줄에 널린 누이의 흰 양말처럼 구절초 꽃바퀴가 바스락거리며 말라가던 그날의 오후
쇠파리처럼 내 정수리에서 한나절 뱅뱅 미끄럼만 타던 뙤약볕도 쩍쩍 하품하며 졸고 있는데
고무신 공장에 일 나가신 우리 엄마 어스름으로 꾸역꾸역 발소리가 질질 끌려오는데
천하무적 샅바 고무줄 나의 유일한 리볼버는 야윈 어머니의 빈손만 표적으로 기웃거리는데
검푸른 탄흔이 저녁연기처럼 밀려오는 그날의 허기
그 행간에서 물감도 붓도 없이 그림일기 숙제를 무작정 써 내려가고 있었다
댓글목록
다섯별님의 댓글
다섯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행간 행간이 너무 빼끄럽고 자연스러워
내가 저 해질녘으로 들어가 어느 한 컷을 보는듯 합니다
"큰 부리 까마귀 떼의 활강이 저물어가는 태양의 허리를 반으로 잘라내고 있다"
얼마나 멋진 비유입니까
이름 아침 좋은 시를 감상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콩트님의 댓글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봄비가 지진파처럼 이곳저곳을 후벼 파는 아침입니다.
이 빗 속으로 하염없이 걷고 싶다는......
시인님께서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요,
^^,
레르님의 댓글
레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그런 날이군요
비가 온 이유가 있었군요....
보고파 하는 이들을 한번쯤 그리워,감사하라고...
명령어는 비로 만든 모르스 암호였군요...
늦게나마 깨달아 저도 보고싶다는 sos를 쳐 볼랍니다..ㅎㅎ..
오늘은 댓글 땜시 운동시간이 부족하겠다는
불평을 적으며...^^
콩트님의 댓글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독백 같은 혼잣말에 귀 기울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하루 잘 지내셨는지요?
오후부터 하늘은 게다가 다시 어두워졌습니다.
주말이 지나면 다시 추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가족과 함께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