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태양과 살고지고 > 창작시의 향기

＊저 태양과 살고지고

저 태양은

매일 동쪽 산에 거시(擧矢)하여

대지 만물에

햇빛 한잔씩을 권하니

저절로 사리에 밝다

좋은 봄볕을 보듬어주고도

꼭 대작(對酌)하자며

억지로 주관하는 눈이 없으니

내가 잔을 들고 숭상할 일도 없다

어둡고 밝은 명암(明暗)의 허구는

그 멈추지 않는 붓질 사이에 환시(幻視)처럼 존재한다

그래도 곱살한 하늘 화공(畫工)의 옷깃 허세일 뿐이니

아직 밉광스러운 일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달과 바다를 붉게 물들여

양각풍(羊角風)이 불 때도 있다

달도 별도 눈길이 반한 듯 마주보는 내내

더는 가까이 오지도 더는 멀리 가지도 않는

너와 나의 적정한 거리,

봄 햇살을 목물처럼 끼얹는 바다도

불타거나 얼어 죽지 않고 가슴을 쓸며 철썩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