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모네 사랑 > 창작시의 향기

창밖을 듣는다는 것은 버림받은 사랑일까
어둠 속을 듣는 소리 사각사각
눈 내리는 소라일까 발자국 소리일까
풀벌레가 꿈을 한 뼘씩 갉아먹는 소리일 거야
그가 내게로 왔을 때도 그랬으니까

보이지 않을까
집 앞 놀이터를 돌아 나오면 슈퍼마켓
애꿎은 물건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자주 가로등 불빛을 보았지
전신주의 전단지들 바람 부는 대로
또다시 술렁이며 손짓했지
등 굽은 보도불록 땀범벅인
하루를 발목에 매달고
미워도 당신*으로
골목을 쓸고 있어

아직은 사랑해
사내가 내뱉은 담배 연기
이 집 저 집 담을 넘보네
달빛에 매화꽃이 하도 창백해
꽃샘비에 젖었을까
저만치 봄 한 줌 뒹구네
불그스레 아네모네 그리네

바람이 창유리를 흔들다가
힘없이 돌아서네

*미워도 당신 : 한국 가요(김상진)